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냉방 갈등이 되풀이된다. 사진은 청계천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김혜원 기자


"밖은 더운데 안은 너무 추워요."

한여름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이 냉방 갈등이다. 각자의 체감 온도가 다른 만큼 냉방 정도를 둘러싼 '온도 전쟁'은 매년 반복된다.


우리 사회에는 적정 실내온도가 존재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민 건강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여름철 실내온도를 공공기관 섭씨 28도, 개인 26도로 '권장'한다. 그러나 실제 시민들이 마주하는 현장의 온도는 이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냉방 줄이면 손님이 나가요"… 현실과 타협하는 자영업자들

냉방 온도와 관련해 자영업자 대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의 매장들이 냉방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혜원 기자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지하 식당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소이씨(26)는 "여름철 매장 내 냉방 온도는 18℃를 유지한다"며 "적정온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매장이 위치한 건물은 냉난방이 중앙집중식으로 이뤄져 공간 자체가 더운 편이다. 박씨는 여름철 손님 유입을 위해 폴딩도어를 설치하고 매장을 반개방형으로 운영한다. 외부 공기 유입과 냉방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고객의 쾌적함을 우선으로 한 조치다.


산업부는 중앙집중식 냉난방 건물의 평균 실내온도 기준을 2도 범위 이내에서 완화하도록 인정한다. 그러나 박씨는 "지하 특성상 공기 순환도 원활하지 않아 손님들로부터 덥다는 민원이 잦다"며 "실내 적정온도는 지하 식당가처럼 구조적으로 열악한 공간의 특수성도 고려해 적용돼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서울 송파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정우씨(52) 역시 "28도를 유지하라는 정부 지침은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주방 열기 때문에 냉방 온도 18도를 유지한다는 김씨는 "냉방 온도를 높이면 손님들이 더워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며 "적정 실내온도 준수는 권장 사항일 뿐 필수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같은 공간, 다른 체감… 적정 온도의 한계

지난 5월 한 달간 접수된 지하철 냉난방 관련 민원은 11만건을 넘었다. 사진은 서울 지하철 객실 내 온도를 측정한 모습. /사진=김혜원 기자


대중교통과 사무실은 냉방 갈등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 중 하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접수된 냉난방 관련 민원은 11만건을 넘었다. 서울 지하철 객실 내 냉방 온도는 환경부 고시에 따라 자동 조절된다. 환경부는 여름철 지하철 객실의 적정 온도 기준을 24~27도로 규정한다. 이 기준은 서울교통공사는 물론 코레일 등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에 공통 적용된다.

그러나 실제 운영 중인 열차의 객실 온도는 이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지난 23~27일 수인분당선 객실 내 온도를 측정한 결과 최저 20.8도까지 떨어진 것이 확인됐다. 출퇴근 시 수인분당선을 이용하는 A씨(29)는 "냉난방 관련 민원을 넣은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민원을 넣으면 온도가 조절되는 것이 체감돼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B씨(33)는 "매년 여름 28℃를 유지하느라 개인 선풍기로 겨우 버틴다"며 "민원인의 불만과 정부 지침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난감하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 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강현우씨(26)는 "근무 공간이 통창 구조라 냉방 온도를 18도로 유지해도 쉽게 시원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정부는 의료기관·아동 관련 시설·노인복지시설 등 적정 온도 관리가 필요한 시설에 대해 탄력적인 실내 온도 유지를 인정한다. 다만 강씨는 "예외가 인정된다고 해도 기준보다 민원 반응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45년 전 기준 그대로… 적정 온도는 여전히 '적정'한가

적정 실내온도 기준은 1980년부터 현재까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경기 성남시 한 문구 매장이 출입문이 열린 채 운영하는 모습. /사진=김혜원 기자


적정 실내온도 기준이 처음 제시된 것은 1980년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대책'이 수립되면서부터다.

당시 설정된 여름철 실내온도 기준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 평균 기온은 1980~1984년 23.8도, 2020~2024년 25.7도로 약 2도의 차이를 보인다.

현장에서는 그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온도 조절이 어려운 지하 식당가, 냉방이 과도한 지하철 객실 등은 정부가 제시한 기준 온도와 거리가 멀다. 시민들의 체감 역시 공간의 구조, 냉방 시스템 등 여부에 따라 제각각이다.

숫자 기준은 존재하지만 더 이상 모든 공간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시대다. 냉방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과거에 기반한 온도 기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간적·환경적 차이를 반영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