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머니S가 학교 현장을 찾았다. 사진은 서울 모 고등학교 인근 모습. /사진=이수빈 기자


"정치요? SNS에서 배워요."

정치는 더 이상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4월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처음으로 16세 이상 권리당원이 참여했다. 2020년 18세 선거권이 도입된 후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22년 공직선거법 제16조 개정으로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 선거 출마 가능 연령이 18세로 낮아졌고 정당법 제22조 개정으로 정당 가입 연령이 16세로 하향 조정됐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 범위가 넓어진 만큼 현장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내기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과 학교 안 정치교육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머니S가 직접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 여러 곳을 찾았다. 서울 은평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가명·16)은 "정치와 법 수업 시간에는 이론만 배운다"고 말했다. 대성고 3학년 김한별군(17)도 "학교에서 선거와 관련한 정치교육을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202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8654명(초 2999명·중 2921명·고 273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청소년 4명 중 1명dms 자신의 정치 참여를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학교 안팎에서의 기회와 정보 부족'을 꼽았다. 기회·정보 부족에 이어서는 '학생 정치참여 지원법의 부족' 18.7%, '학생 정치참여에 대한 학교 교육의 부족' 16.3% 등이 저해 요인으로 지목됐다.

박상준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으로 16세 이상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제도적으로 확대됐지만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정치교육 또는 선거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청소년이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을 어떻게 행사하고 정당에 가입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주권자로서 정치적 판단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도 배우고 싶어요"

학생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교실은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A양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친구들이 SNS나 커뮤니티에서 허위 정보를 접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왜곡된 정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진관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용준군(17)도 "정치는 주로 인터넷이나 SNS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충 이해한다"며 "이런 정보들을 학교에서 교육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은평구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B양(가명·16)은 "한 정당의 정책이나 활동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보다 구체적인 정치교육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어른들이 세금 공부하는 것처럼 지금부터 세금의 종류, 체계 등을 배우고 싶다"며 삶과 밀접한 실용적인 수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치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학생뿐만이 아니다. 중학교 영어 교사 C씨(24·여)는 "수박 주스를 마시면 빨간색, 국민의힘이고 파란 영어 교과서의 표지는 이재명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이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역사 교사 D씨(26·여)는 "고3의 경우 이번 대선 투표에 참여한 친구들도 있다"며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들로 정치를 이해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막상 교육하기엔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C씨는 "보수적인 분위기와 보호받을 수 없는 교사의 위치 때문에 교육하기 무섭다"며 "민주시민교육부에서 일하며 세월호 추모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가 눈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중학교 사회 교사 E씨(24·여)도 고심이 깊다. E씨는 "교육 중 하는 발언들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까 봐 걱정"이라며 "학부모 민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고등학교의 경우 2022년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정치' 과목이 진로 선택으로 분류되고, 2028년 대입 수능부터 수능 과목이 '통합사회'로 바뀌는 등 정치교육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반영하기는 어렵다. D씨는 "현장에서는 시간이 없어 방학 때 보강까지 한다"며 "대입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교육이 현장에 반영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라고 하면서도 "현장에서 정치교육을 하는 교사들의 경우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정치적 중립의무로 인해 선거교육이나 정치교육의 제한이 많다"며 적절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정치를 체험할 기회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정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박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학교에서 선거와 정치제도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실제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모의 선거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의 선거를 통해 투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선거 참여 태도가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의견이다.

이 팀장은 "청소년이 시민으로서 정당 가입이나 활동, 투표 등 실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 교과목'이나 '정치과정의 체험'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A씨는 "학생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학급 자치에 배당된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E씨는 "교사가 입장을 제시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직접 사회적 사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에게도 정치교육은 필요하다.

사회 과목을 담당하는 고등 교사 F씨(34·여)는 "정치, 법 관련 과목 연수는 아쉬운 수준"이라며 "교과 지도 계획을 세우고 민원 없는 안전한 수업을 하는 방법에 주안을 둔 것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청소년 정치교육' 관련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고등학교 교사 특히 도덕, 사회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16세 이상 청소년의 정치 참여 제도화에 따른 '정치교육' 또는 '선거교육'에 초점을 맞춘 연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팀장은 "교사가 민주주의나 민주시민 등과 관련된 교육 과정이나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며 "관련 프로그램을 한국정치학회, 선거연수원 등의 단체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정치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그래프. /그래픽=김다정 기자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정치권 등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두 전문가 모두 이에 동의하며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언급했다. 논쟁 문제의 재현, 주입 금지, 학습자 이익 또는 정치 참여 역량을 보장하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교육의 기본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독일의 여러 정치 세력이 정치교육의 방향을 두고 오랜 시간 논의한 끝에 나온 기준이다. 정치적 다양성과 시민적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이 합의는 지금까지도 정치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남아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교사는 정치교육 시 자신의 입장이나 가치를 학생에게 주입해선 안 된다. 수업 안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하며 학습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정치적 판단과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팀장은 "15대 국회 이후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법안을 발의해 왔지만 아직 법률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권에서 관련된 논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