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문을 닫는 자영업자 수가 100만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입구에 임대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사진=뉴스1


금융위원회가 2차 추가경정예산 4000억원을 반영한 장기 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배드뱅크)을 가동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이자를 못 갚는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부채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다. 약 113만명의 장기 연체채권이 소각 또는 채무조정될 전망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거나 채무를 조정한다.

정부는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상환능력 제고 기회를 상실한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정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경기 부진 지속으로 자영업자 연체율이 큰 폭 상승하고, 연체 장기화로 인해 채무 불이행도 크게 확대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경 시정연설에서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라도 고통의 무게는 같지 않다"며 "코로나 위기부터 불법 비상계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신 소상공인, 자영업자, 취약계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연체채권 소각에 추경 예산 4000억원과 금융권 지원 4000억원을 합쳐 총 8000억원을 쓸 계획이다.


이번 프로그램 신설로 도덕적 해이와 성실 상환자 형평성 우려가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엄정한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 '정말 갚을 수 없는 빚'에 대해 소각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금융위 측은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 능력이 없는 차주의 채무만 소각할 것"이라며 "채무조정 지원이 적절치 않은 채권에 대해서는 매입하지 않거나, 지원 결격사유로 명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주식투자로 부채가 발생하는 금융투자업권 채권이나 사업자등록번호 확인을 통해 유흥업 등을 영위하는 소상공인 채권은 매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융위가 발표한 장기 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에는 업종 제한이 따로 없었지만, 도박 및 사행성 사업 빚까지 탕감을 해줘야 하느냐는 지적에 일부 기준을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지원 범위도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 및 2020년 코로나 긴급재난 지원금의 경우 영주권자 및 결혼이민자를 포함해 지원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경을 통해 장기 연체채권 소각에 나서자 도덕적해이, 세금낭비, 성실채무자에 대한 역차별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당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번 정부의 배드뱅크는 유사한 선례가 거의 없는 만큼 부작용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주도의 배드뱅크 설립은 미국, 베트남, 스웨덴 등 해외에서 시행된 바 있지만 주로 금융기관의 기업 대출 부실 자산 정리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 구상은 가계·소상공인 연체 채무 조정을 목적으로 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배드뱅크는 국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가 없도록 엄격한 수혜자 선별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 의지를 보였고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