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가 폭염법 등 폭염 대책의 제도화를 촉구하며 규제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폭염 속 서울 시내의 한 건설현장. /사진=뉴시스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열질환 사고가 급증하며 야외 작업이 불가피한 건설현장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현장 노동자의 온열질환 예방과 안전 확보를 위해 폭염 대책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만 규제 중심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시공사들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은 폭염에 대응한 대책을 시행 중이다. 때 이른 폭염이 이어지자 현장 냉방설비 확충과 작업시간 조정 등 대책이 잇따라 시행됐다. 최근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사고마저 발생해 안전관리 비상체계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선 20대 베트남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의 당시 체온은 40.2도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고온에 의한 온열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추정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5월15일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가동한 후 지난 8일까지 누적 환자는 1228명 발생했다. 사망자는 8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질병관리청은 온열질환자 수가 2011년 집계 후 가장 빠르게 늘었다며 야외 근로자와 노인 등 취약 집단에 주의를 당부했다. 올해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는 실외(81.1%)가 가장 많고 작업장(28.7%) 등에서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업종별 온열질환 산재 승인 비중은 건설업이 48%로 가장 높다. 야외 작업을 해야 하는 건설업의 특성상 온열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이 심해지고 날씨 예측도 어려워져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폭염 속 건설현장, 제도화 딜레마

냉방장치·휴게시설 부족 등 기본 보호 여건이 미비한 현장이 적지 않아 폭염 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건설현장 노동자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온음료를 마시는 모습. /사진=뉴시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냉방장치·휴게시설 부족 등 기본 보호 여건이 미비한 상황도 적지 않다. 이에 현장 일선에서 폭염을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보호체계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폭염 대응지침 이상의 '폭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폭염법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건설 사업주 체감온도(온습도) 관리 ▲건설현장 휴게실·그늘막 설치 강화 ▲샤워실·탈의실 등 세척시설 설치 의무화 등을 시행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관련 법은 국회를 통과해 규제개혁위원회 반대로 재검토 중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현장에는 철근 등 열을 흡수하는 자재들로 체감온도가 훨씬 높고 중노동이 겹쳐 폭염에 더 취약하다"면서 "중소 사업장은 물론 대형 현장도 쉴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작업 물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이 쉬겠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고용노동부령이 즉각 발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체가 관련 비용을 투자할 수 있도록 공기 연장 등 정산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업계의 의견도 나온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2시간 작업 후 20분 휴식' 등 규정이나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시설 의무화 조치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늘어나는 공기와 공사비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폭염 대응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근로시간 조정 등 문제로 인해 실제 도입에 이르지 못했다.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서도 근로시간 관련 사안은 매우 민감해서 제도화된 사례가 없다"며 "기업은 정해진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므로 작업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업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