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후속 입법 논의를 놓고 여야와 전문가들이 정면으로 맞섰다. 사진은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공청회를 연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후속 입법 논의를 놓고 여야와 전문가들이 정면으로 맞섰다. 여당은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와 투명한 경영 구조 정착을, 야당은 기업의 경영 안정성과 자율성을 각각 강조하며 충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도 도입의 실효성과 잠재적 부작용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더 센 상법 개정안'을 오는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여야 간 입법 줄다리기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공청회를 열고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보완 입법 사항을 논의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윤태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서 제외된 조항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개진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이사 선임 시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소액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대주주의 감사위원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로 현재 1명인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2명으로 늘려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균택 "공포 마케팅" vs 주진우 "SK·소버린 사태 재현 우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의 보완 입법을 통해 기존의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개정안이 주주총회와 이사회 운영에 혼선을 초래하고 국내 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에 무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은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박균택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광산구갑)의 모습./사진=김성아 기자


공청회에서는 여야 의원 간 격론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의 보완 입법을 통해 기존의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의힘은 해당 개정안이 주주총회와 이사회 운영에 혼선을 초래하고 국내 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에 무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자칫 기업의 주요 경영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위험성도 제기했다.

박균택 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광산구갑)은 국내 소수 주주들이 대주주에 대해 '경영권 탈취'라는 적대적 인식을 갖고 똘똘 뭉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면서 "(상법 개정)반대론자의 논리는 마치 소수 정당이 제1당이 돼 정권까지 다 차지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공포 마케팅'"이라고 주장했다.


주진우 의원(국민의힘·부산 해운대구갑)은 "(상법 개정안을)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주주(헤지펀드)의 구도로 보면 위험성이 상당하다"며 "실증적으로 이미 SK·소버린 사태 때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사례를)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은 SK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를 통해 2.99%로 쪼개 분산 매입한 뒤 경영진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이후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며 SK 주가가 상승했고 소버린은 약 9459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뒤 철수했다.

자사주 의무 소각도 도마 위…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 사라질 것"


이날 공청회에선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명히 갈렸는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와 함께 기업 현실과 부작용을 우려한 신중론도 제기됐다. 사진은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서 진술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명히 갈렸다.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와 함께 기업 현실과 부작용을 우려한 신중론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측 진술인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집중투표제 도입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집중투표제는 경영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과 달리 실증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경영 성과를 개선하는 사례가 일관되게 여러 나라에서 관찰됐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회사의 감사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로 받아들여야 하며 만약 우려가 있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 입법을 병행하는 게 맞다"고 제도 시행 후 보완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우찬 교수 역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이론상의 우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회사 중 실제로 이 제도가 적용된 사례는 10년에 걸쳐 3건에 불과하다"며 "2020년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1명을 분리 선출할 수 있게 됐지만 주주 요청에 따라 실제 분리 선임이 이뤄진 것은 5년 동안 33건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 두 제도를 활용해 실제 지배권이 상실되는 사례는 이론상의 우려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측 진술인 정우용 정책부회장은 기업의 경영 안정성 측면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제도 도입이 자칫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고 성장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두 제도가 그대로 시행되면 최대주주가 30%에서 50% 정도를 투자했더라도 경영권을 갖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은 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이들 기업이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최준선 명예교수도 부작용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주주 집단 간 갈등과 투쟁의 장이 되고 이사회는 대리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제도 운영의 현실적 위험성을 지적했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자산총액 2조 원 미만의 회사로 전환해, 상근감사 1명만 두는 방식으로 사이즈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제도 도입이 오히려 기업 규모 축소를 유도하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성북구을) 등이 지난 9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 가운데 '자사주 취득 시 1년 내 소각 의무화' 조항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이 조항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자사주 의무 소각 관련 상법 개정을 오는 9월 열리는 정기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최 교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으로 기업의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도 소멸될 위기에 놓여있다"며 "기업이 성장과 투자, 주주환원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