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방문객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장기를 먹으로 덧칠해 만든 '서울 진관사 태극기'를 살펴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대를 110여 점의 유물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2일부터 두 달간 개최된다. 2025.8.1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군데군데 구멍 나고 불에 탄 흔적까지 선명하다. 가로 89㎝·세로 70㎝ 크기의 이 태극기는 1919년 3·1 운동 당시 제작돼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극대화했다고 평가된다. 최근 배지로도 제작돼 관심을 끈 '서울 진관사 태극기'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는 항일유산 11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근대기 항일 독립유산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는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항일유산이 담고 있는 역사를 총 5부로 나눠 소개한다. '자주구국의 유산', '민중함성의 유산', '민족수호의 유산', '조국광복의 유산', '환국의 유산' 등이다. 1층에서는 1부와 2부, 2층에선 3~5부가 펼쳐진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방문객들이 최근 경매를 통해 일본에서 환수해 첫 공개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綠竹·푸른 대나무)을 살펴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대를 110여 점의 유물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2일부터 두 달간 개최된다. 2025.8.1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진관사 태극기는 오는 17일까지 실물 볼 수 있어

이번 전시 구성을 총괄한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함께 외친 만세의 함성, 시련을 이겨내려는 노력,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자 했다"며 "연구자로서 이런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실물로 볼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지난해 7월 일본에서 환수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지난 4월 개인 소장자가 경매를 통해 환수해 온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綠竹), 대한제국 주미공사 이범진의 외교일기 '미사일록'(국가등록문화유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제출한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등이 처음 공개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 태극인 보물 '서울 진관사 태극기', 일제강점기 유럽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서영해의 외교 활동을 보여주는 '독립운동가 서영해 자료'(국가등록문화유산) 등 전국에 흩어져 있던 항일유산이 한자리에 모인다. 특히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진관사에 반납해야 하는 관계로 오는 17일까지 볼 수 있다. 이후에는 복제본이 전시될 예정이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방문객들이 백범 김구 선생(오른쪽)과 윤봉길 의사가 의거 당일 교환한 회중시계를 살펴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개항기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는 시대를 110여 점의 유물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2일부터 두 달간 개최된다. 2025.8.1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피흘림 없는 독립은 값없는 독립"

관람객들 눈시울 뜨겁게 할 유물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윤봉길(1908~1932) 의사가 '폭탄 의거'를 결행하기 석 달 전인 1932년 1월, 어머니에게 보낸 친필 편지다. '어머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그는 "놀라시지 마십시요, 너무나 념녀하시지 마습시요"라며 모친을 안심시킨다.

광복군의 결의가 빼곡히 담긴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태극기에 적힌 "피 흘림 없는 독립은 값없는 독립" "우리는 조국을 위하야 피를 흘리자" 등의 글귀와 함께, 고윤병·김만준·윤병천 등 '무명(無名)'의 독립운동가들의 서명을 마주하면 광복의 무게가 더욱 깊이 다가온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항일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역사이고 우리 국민의 정체성으로 미래세대에 계승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일제의 강압과 억압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선열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덕수궁 돈덕전 아카이브실에서 이번 특별전과 연계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14일에는 '항일독립운동과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 15일 황선익 국민대 교수의 '빛을 담은 항일유산 전시를 말하다'와 16일 최태성 한국사 강사의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광복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대중 강연이 진행된다.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 언론 공개회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국가유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