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가운데 현실에서는 여전히 규제 일변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에 부합하며 가상자산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이 급등하며 630만원대를 뚫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전광판에 이더리움 시세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가운데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과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금융혁신 분야'로 분류하고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규제 일변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정위는 지난 13일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123대 국정과제를 공개했다. 이 중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은 48번째 과제로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분야의 다섯 번째 전략인 '성장을 북돋는 금융혁신'에 포함됐다. 해당 과제는 금융위원회 소관으로 추진되며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 등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같은 계획은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대통령은 ▲디지털자산 생태계 정비 ▲가상자산·연계상품 제도화 ▲토큰증권 법제화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과제 역시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건전한 자본시장 발전과 자본시장 활성화 등 새 정부 금융 국정과제를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생태계 구축과는 거리가 먼 규제가 이어지면서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이 금융당국의 코인 렌딩(대여)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서비스를 축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비트는 코인 빌리기 서비스에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제외했고 빗썸은 코인 대여 비율을 기존 4배에서 2배로 낮췄다. 특히 빗썸은 기존 '렌딩'과 '간편 렌딩' 상품을 종료하고 '렌딩플러스'만 유지하며 대여 비율을 2배로 줄이고 한도도 5분의1 수준으로 축소했다. 이용 조건 역시 누적 거래대금 1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코빗과 코인원도 코인 대여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지만 당국과 업계의 움직임을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빗썸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2%가 렌딩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60.2%는 실제 수익을 거둔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상당수 투자자가 현물거래 외 파생상품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이달 중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제재는 없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정책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17년 실명계좌 제도 도입 당시와 닮았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나 미성년자의 계좌 개설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국의 유권해석과 협의 요청에 따라 신규 발급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번에도 법적 근거 없이 '지침이 곧 규제'로 작용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주식시장과 다른 구조를 갖고 있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해외 거래소들은 바이낸스(마진거래 최대 10배), 바이비트·빙엑스(선물 100~150배), 멕씨(선물 최대 500배) 등 고배율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이 같은 차이로 인해 해외 거래소로의 자금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2024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화이트리스트에 등록된 해외사업자 및 개인지갑으로 건당 100만원 이상 출금된 금액은 총 130.7조원에 달했다. 이는 상반기 대비 38% 증가한 수치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갖춘 해외 거래소로의 자금 유출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각에서는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해 단기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누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주식시장에 집중돼야 할 자금이 가상자산으로 이동하면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주식과 가상자산을 모두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주식과 가상자산을 정책적으로 모두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국정과제에 '코스피 5000'이라는 구체적인 지수를 명시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도 가상자산의 글로벌 트렌드 변화를 인식하고 있지만 국내 서비스 환경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며 "일정 수준의 조정은 불가피하더라도 불명확한 상태가 장기화되면 사업자의 기획권과 투자자 선택권 모두가 제약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