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인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장 제공)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김종훈 기자 = 사회사목과 생태윤리, 정의와 평화를 위해 평생 헌신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가 15일 선종했다. 향년 63세.


유경촌 주교는 가난한 이웃과 환경 보호를 위해 발로 뛰며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는 사목 표어를 끝까지 실천한 목자였다. 유 주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1962년 서울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유경촌 주교는 어린 시절 신앙과 인연이 깊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서대문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성소의 길이 열렸다. 세례 후 그는 성당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명동대성당에서 복사로 봉사하며 사제의 꿈을 키웠다.


고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가톨릭대학교 대신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학문적 열정이 뛰어났던 그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 상트게오르겐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창조 질서 보전 문제로, 사회윤리와 생태윤리를 결합한 연구였다. 이는 훗날 그의 사목 방향을 결정짓는 기초가 됐다.

귀국 후 1990년대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목5동 본당 보좌신부로 첫 사목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신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빈민과 소외계층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제 생활 초기에 그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으로서 교구 사목 체계를 정비하고, 사목자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썼다. 이 시기 그는 "신앙은 삶의 모든 영역과 맞닿아야 한다"는 철학을 명확히 했다.

고인은 2013년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으며 2014년 2월 명동대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됐다. 사목 표어는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였다. 이는 섬김과 겸손, 실천을 강조하는 예수의 발세례를 본받겠다는 뜻이었다. 서품 당시 그는 "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보좌주교로서 그는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로 활동하며 환경·빈민·이주민 사목을 총괄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리 집회에 참여했고, 농민 주일 미사에서 도시와 농촌이 생명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 돌봄은 신앙의 필수 요소"라고 거듭 말했다.

2018년 성가정입양원 아동학대 사망 사건 당시 운영책임자로서 그는 관리 부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유가족,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는 "교회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여러 저서를 통해 신앙의 공동체적,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21세기 신앙인에게' '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 등에서 그는 개인의 신앙이 공동선과 창조세계 보전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설파했다. 마지막 저서 '지구라는 집에 불이 났다'에서는 환경 위기의 긴급성을 경고하며 생활 속 작은 실천을 촉구했다.

말년 그는 담관암 투병 중에도 사목을 이어갔다. 병세가 악화되자 그는 병상에서도 교구 사제와 신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끝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4년 1월 15일 0시 28분,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빈소는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됐으며, 17일 오후 3시에 입관, 18일 오전 10시에 장례미사가 거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이다.

유경촌 주교의 생애는 겸손과 섬김,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헌신으로 점철됐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환경 보호를 위해 기꺼이 현장에 나섰고, 교회의 부족함에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의 사목은 신자와 시민 모두에게 "신앙은 삶의 실천"임을 보여줬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가톨릭교회 사회사목의 중요한 이정표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