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 수밖에'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춘천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학생 아들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버지는 오랜만에 마주 앉은 밥상에서 심한 말을 쏟아낸다. 엄마는 그런 아들을 감싸고, 부부의 갈등은 심화한다. 일 때문에 타지에서 살았던 아버지는 늦은 밤 집을 나서고, 운전하며 달리던 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가다 사고가 나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중학교 미술 교사로 일하는 정하(장영남 분)는 항암 치료를 앞두고 휴직한다. 학교에 출근한 마지막 날, 캐나다 유학 중인 아들 진우(류경수 분)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여자 친구 제니(스테파니 리 분)와 함께 정하를 찾아 학교에 온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을 전한다. 의사인 제니와 달리 어학원에서 일하며, 그마저도 그만두고 유튜브를 하겠다는 진우의 말을 듣는 정하는 착잡한 심정이다.

'비밀일 수밖에' 스틸 컷


'비밀일 수밖에' 스틸 컷


세 사람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 지선(옥지영 분)이 집으로 돌아온다. 지선은 정하와 동거 중인 동성 연인이다. 아직 아들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정하는 지선을 친구로 소개하고, 네 사람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러던 중 제니의 부모 문철(박지일 분)과 하영(박지아 분)이 갑작스럽게 딸에게 연락을 해온다. 두 사람은 말도 없이 춘천에 왔고, 묵을 숙소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정하는 어쩔 수 없이 제니의 부모에게도 방 한 칸을 내준다.


다음 날, 두 가족은 제니와 진우의 셀프 웨딩 촬영을 따라다니며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제니의 부친인 문철은 대놓고 진우의 '스펙'에 대해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고, 결혼식이나 신혼집에 대해서도 끝없이 불평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하는 면목 없어 하며 결혼에 보태줄 것이 적어 고민한다. 게다가 그는 아직 아들에게 지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의 암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다.

'비밀일 수밖에'에는 세 커플이 나온다. 정하와 지선, 진우와 제니, 문철과 하영이다. 정하와 지선은 두 사람의 관계와 정하의 병에 대해, 문철과 하영은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쳐있는 현실, 가족들에게 빚을 떠넘기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있다. 진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는 죄책감에 눌려있고 제니는 어디서든 무례하고 불쾌하게 구는 아버지 문철 때문에 고통스럽다.


영화는 세상 어디엔가 있을 법한 캐릭터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 보는 이들의 몰입을 이끈다. 특히 지나치게 솔직해 걸핏하면 선을 넘는 중년 남성 문철은 영화 속에서 종종 예상 못 한 웃음 구간을 만드는 인물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 듯한 그의 캐릭터는 사근사근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아내 하영이나 그와는 정반대 성격인 예비 사위 진우와 부딪칠 때 흥미로운 케미스트리를 발산한다.

'비밀일 수밖에' 스틸 컷


'비밀일 수밖에' 스틸 컷

가족에게 고통을 안겼던 가장이 죽는 것으로 시작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다. 틀에 박힌 생각과 이기적인 태도로 불행을 가져온 이 가장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는 각자 자기 몫의 인생을 살아왔고, 또 새롭게 시작한다. 문철의 구원이 곧 그의 모든 허물을 용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영화는 그런 그를 뒤로한 채 새롭게 출발하라고 말한다. 춘천의 가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용서와 화해, 새출발 같은 주제를 따뜻하게 그려냈다. 다채로운 캐릭터와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가 인상 깊다. 상영 시간 113분. 오는 1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