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적 생명박탈, 부수적 피해, 기술적 조정…말장난 가려내기
말이 진실을 가리는 순간, 시민은 무엇으로 판단할까
[신간] 더블스피크
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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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공공 언어가 의미를 흐리고 책임을 지우개처럼 문질러 지울 때, 시민의 판단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 언어 조작의 기술과 정치·전쟁·광고의 수사법을 해부한 윌리엄 러츠의 '더블스피크'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정치 연설과 관료 문서, 기업 광고와 뉴스 자막은 종종 '사실을 말하는 척'한다. 러츠는 이를 더블스피크라 부른다. 핵심은 단어가 뜻을 숨기거나 바꾸는 순간에 생기는 인지의 착시다.
'살해' 대신 '불법적 또는 임의적 생명 박탈', '민간인 사망' 대신 '부수적 피해' 같은 표현이 그 예다. 단어를 바꾸면 현실도 바뀐 것처럼 보인다. 독자는 정확한 의미에 도달하기 어려워지고, 책임의 윤곽은 흐려진다.
러츠는 더블스피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설계된 언어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애매한 완곡어법, 현란한 전문용어, 과장된 수사, 모호한 통계는 서로 맞물려 '말의 방탄복'을 만든다. 이 방탄복은 권력과 자본의 불편한 진실을 막아준다.
광고의 '도움이 된다' 같은 어휘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암시한다. 정치를 수식하는 '유연화' '정상화' '안정을 위한 조치' 같은 말들은 무엇이, 누구에게, 왜 필요한지 핵심 정보를 비껴간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속는 장면을 포착한다. 소비자 앞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마술을 드러내고 언어 조작의 기술자를 추적한다. 각 장은 풍부한 사례를 짧고 날카롭게 쌓아 올리며 독자의 '의심하는 습관'을 강화한다.
러츠가 겨냥하는 대상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나쁜 언어 습관'이다. 그는 공적 담론이 명료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본다. 말이 복잡해질수록 책임은 흐려지고, 책임이 흐려질수록 시민은 냉소와 무력감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자이자 시민으로서 "불량한 상품을 반품하듯 불량한 언어를 반품하자"는 일관된 요구를 내놓는다. 모호한 문장을 되돌려 보내고, 정확한 용어를 요구해서 그 요구가 쌓일 때 공공 언어는 명료해지고, 판단의 토대는 단단해진다는 저자의 믿음이다.
△ 더블스피크/ 윌리엄 러츠 지음/ 유강은 옮김/ 교양인/ 2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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