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후판공정. /사진=현대제철


"꽝―꽝―."

지난 22일 찾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후판공장에서는 수 톤(t)에 달하는 슬라브(철강 반제품)가 레일 위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궈진 철판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후끈하게 변한다. 두께 300mm의 거대한 슬라브가 뜨거운 압연 과정을 거쳐 두께 10mm의 후판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얇게 펴진 철판을 냉각대(배드)에서 식히면 우리가 흔히 아는 후판이 된다. 현대제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열처리 공정을 가해 강도가 높고 탄성이 좋은 고부가 제품을 만든다.

열처리 공정은 말 그대로 철판을 다시 한 번 달구고 식히는 과정이다. 높은 온도로 가열한 뒤 빠른 속도로 온도를 낮추면 강도 높은 후판을 만들 수 있다. 핵심은 길이, 폭, 두께 방향을 모두 일정하게 만드는 것이며 현대제철은 이를 위해 수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 왔다.
당진제철소 후판 열처리 설비. /사진=현대제철


높은 온도로 철판을 달군 뒤 강력한 물줄기를 쏟아부어 급속 냉각하는 공정(퀜칭 Quenching)을 거친 철판은 전혀 다른 성질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깨지기 쉬운 '취성'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낮은 온도로 달구는 템퍼링(Tempering) 과정을 거친다.


천승환 후판개발팀장은 "열처리는 라면 끓이듯 불을 직접 대는 게 아니라 버너를 이용해 사우나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전체가 균일한 온도에 도달하도록 한다"며 "급속 냉각은 물을 쏟아부어 온도를 단번에 상온까지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강도를 크게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제철의 후판은 조선, 해양 구조용, 파이프라인 등 높은 강도가 요구되는 분야에 공급된다. 일반 후판과 달리 특수 공정을 추가로 거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뿐 아니라 중국산 저가재와 경쟁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국내 철강시장이 중국산 저가재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열처리 후판은 예외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후판공장은 철강산업 불황이 무색하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올해 초 추가 설치한 후판 열처리 설비 덕분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두 번째 열처리로를 가동했다. 기존 1열처리로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로 현대제철은 후판 열처리 캐파(CAPA)를 기존 15만톤에서 올해 30만톤으로 2배 확장했다.
현대제철 관계자가 생산된 후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천 팀장은 "열처리 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고 향후에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밝혔다.

신규 설비는 기존과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한다. 제철 부산물인 코크스 오븐 가스(COG)를 사용했지만 새 설비는 LNG를 연료로 사용한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성을 강화했다.


생산할 수 있는 두께 범위도 늘었다. 기존 120mm 한계를 넘어 최대 150mm까지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처럼 두껍고 특수한 후판을 필요로 하는 시장을 겨냥한 조치다.

특수 열처리된 후판은 해외에 전량 의존하던 방산용 소재를 국산화하는 성과도 거뒀다. 약 10년의 연구를 거쳐 지난해부터 장갑차용 고경도 장갑판재(HH강)를 국내 방산 업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강재는 빠른 기동성이 중요한 장갑차의 특성에 맞게 두께가 얇으면서도 매우 높은 강도와 경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현대제철과 세아제강이 공동 개발한 특수 후판 제품.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은 장갑차용 후판 개발 경험을 토대로 단기간에 전차용 후판(RH강) 개발도 완료했다.전차용 후판은 포탄이나 지뢰 폭발에도 잘 견디는 높은 '인성'이 요구되는 소재다. 현재 상용화 단계에 있으며 현대제철은 이를 국내 방산 업체에 공급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고부가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는 전략이다. 에너지 플랜트용 압력용기와 배관, 방산용 장갑판, LNG 극저온 탱크와 터미널용 강재 등 기존 수요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미래 수소 사회를 대비해 액화수소 저장용기와 고압 파이프라인용 후판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천 팀장은 "중동 플랜트부터 LNG선, 방산까지 고객사 요구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면서도 "그만큼 고부가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