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을 끌어내려서는 나라를 세울 수 없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정치권이 기업인을 포퓰리즘적으로 공격하려는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 발전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독재 통치로 명암이 엇갈리지만 그의 기업 친화적 정책은 싱가포르를 1인당 GDP 7만 달러 수준의 선진국으로 끌어올렸다.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협력한 결과다.


최근 한국에서도 민관 협력이 주목받는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미국을 찾아 각 기업이 미국 경제에 기여할 방안을 미 정부에 직접 전달했다. 최근 정부와 트럼프 측이 관세 협상안을 두고 이견을 빚자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를 만나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두 국가 모두 민관 협력을 중시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정치권이 기업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싱가포르는 기업을 국정 파트너로 여기는 반면 한국은 규제와 감시 대상으로 본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기업인 증인 채택을 줄인다고 했지만 지난해보다 8명 늘어난 164명이 소환됐다. 수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일부 증인은 실수로 소환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남는다.


국감 첫날 최주선 삼성SDI 대표는 리튬 배터리 사고 관련 질의를 위해 소환됐다. 문제의 사고는 창천동 배터리 화재였지만 삼성SDI 제품은 아니었다. 중국산 배터리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국회는 확인 없이 최 대표를 증인으로 불렀다. 국가정보원 화재 관련 증인으로 채택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도 사고는 교체 과정의 부주의 때문이었지만 제조사라는 이유만으로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도 기업인들은 국감 회의장 뒷편을 가득 메웠다. 경제가 급박하게 돌아가지만 이들은 하염없이 답변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립자는 CEO의 역할을 두고 '중요한 결정에서 마지막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국감에 나온 기업인들은 질의하는 의원이 바뀔 때마다 답변과 사과를 반복해야 했다.


기업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민관 협력은 기업이 정부를 돕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힘을 합쳐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것이다. 철강업계는 미국·EU 고율 관세와 중국 저가 공세로 현대차는 일본보다 높은 25% 관세로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중단으로 고충이 쌓이고, 반도체 업계는 미중 갈등과 관세 여파로 수익이 감소할 조짐이다.

하지만 지난 8월 여야 의원 106명이 발의한 K스틸법은 정쟁 속 국회에 계류돼 있고, 배터리 업계의 R&D 세금 감면 외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요구에 정치권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 지원을 위한 9개 법안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맴돌고 있다.


정치권이 기업을 상호협력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기업은 살 길을 찾아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1983년 스웨덴에서는 포퓰리즘성 법안인 노동자 기금법 통과 이후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본사를 옮겼고 경제가 흔들렸다. 한국도 기업만 국가를 돕는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같은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내우외환 속 한국 경제 성장률은 1% 아래로 추락했다. 기업과 국가가 공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