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읽는 인간] ⑤ 권력과 위대함의 딜레마: '울프 홀'과 '굿 투 그레이트'
김영태 아케이드 프로젝트 대표
공유하기
조직 안에서 권력의 움직임을 가까이 보는 일은 하루하루 전쟁터를 살피는 것과 같았다. 회의실 한쪽에서는 다음 인사의 향방을 놓고 눈빛이 교차하고, 복도에서는 승진 소식에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시선이 오갔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물러났다. 한 사람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 곁에 있던 무리들이 함께 오르고, 같이 밀렸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에 따라 움직이고, 사소한 귓속말 하나가 운명을 바꾸기도 했다. 나는 그 때 그 회의실과 복도에서, 권력의 냄새가 얼마나 빠르게 방향을 바뀌는지 목격했다.
권력의 이동은 단순한 직급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가 얽힌 복합적 과정이었다.
기업과 공공의 세계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권력의 균형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뒤엉킨, 마치 얼음과 물이 맞닿은 경계처럼 미묘했다.
■ 권력의 현실과 상시적 균열
힐러리 맨틀의 소설 '울프 홀(Wolf Hall)'은 권력의 이동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16세기 헨리 8세 궁정, 그 안에서 사람들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계산하고, 더 깊이 숨죽이며 움직인다. 맨틀은 이 책으로 두 번의 맨부커상을 받았고, 세기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토머스 크롬웰이 주인공이다. 청교도 혁명의 올리버 크롬웰과 혼동하기 쉬운데, 다른 인물이다.
토머스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잔혹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상인 수습, 변호사, 외교관을 거쳐 헨리 8세의 곁에 섰다.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는 왕의 정치적 싸움 속, 그는 브레인으로 움직였다.
맨틀은 크롬웰을 이렇게 묘사한다.
"신과 대화할 수는 있지만, 응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사람."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갖기 위해, 현실을 우선하는 사람.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생존과 선택의 철학이었다. 그는 상황을 읽고, 사람을 관찰하며, 움직임 하나하나에 계산을 숨겼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작은 손짓 하나에도 권력의 균형이 흔들렸다.
크롬웰은 궁정에서의 미묘한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왕이 어느 날 갑자기 내리는 결정, 신하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 심지어 귀족들이 서로 주고받는 비밀스러운 속삭임까지. 그 모든 것이 권력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변수였다. 오늘의 동맹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한 순간의 침묵이 치명적인 오해를 만들 수도 있었다.
■ 위대한 조직의 위대한 리더
경영학 거장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에서 위대한 조직을 만드는 핵심으로 '레벨 5 리더십'을 꼽는다. 겸손하지만 결단력 있는 리더, 야망과 겸손의 모순적 조합이 조직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계단은 이렇다.
▴레벨1: 유능한 개인
▴레벨2: 헌신하는 팀멤버
▴레벨3: 유능한 관리자
▴레벨4: 효과적인 리더
▴레벨5: 겸손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
레벨 5는, 겸손이 결단력의 또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크롬웰 또한 이 정의에 가깝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연설하지 않으며, 전장에서 깃발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추진력은 숨겨진 폭발력을 가진다. 겸손을 가장한 무서운 의지와 실행력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뒷맛이 씁쓸하다. 박수를 치기 쉽지 않다. 가려져 있다는 느낌, 어둡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그림자 같다. 성공 뒤에 숨어 있는 위험, 힘의 크기에 따라 늘어나는 그림자 말이다. 권력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 먼저 '사람'을, 그 후에 '무엇'을
콜린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먼저 사람을, 그리고 난 후에 무엇을(First who, then what)."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가 먼저라고 한다. 잘못된 사람을 조직의 버스에 태우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실패한다. 인재 버스 문제는 현실에서 훨씬 복잡하다. 누구를 얼마나 빨리 내려보낼 것인가, 그 한 가지가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크롬웰도 원칙에 맞게 움직였다. 왕의 의중을 읽고, 알맞은 사람을 제자리에 앉혔다. 앤 불린 지지파를 배치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며 권력의 균형을 설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람을 모았으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남았다. 권력자의 변덕으로 앤 불린은 몰락했고, 크롬웰도 함께 무너졌다.
■ 오너의 3심, 그리고 현대의 리더십
현대 조직에서도 권력자의 변덕은 존재한다. 오너의 욕심(慾心), 의심(疑心), 변심(變心)—'3心'에 따라 조직이 흔들리고, 뛰어난 경영진을 배치했어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권력을 잡지 못하면,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잃는다.
현대 기업에서는 회장 한 사람의 결정이 수천 명의 운명을 흔들기도 한다. 회장의 아바타 CEO가 바뀌면서 전략 방향이 바뀌고, 중간 관리자들이 갈팡질팡하는 상황도 흔하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조직은 분산된 권력 구조, 주주, 이사회, 시장 평가라는 필터를 통해 리더십을 시험받는다. 한 사람의 변덕만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크롬웰은 묻는다.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콜린스가 질문한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두 질문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겹치고, 이어지며, 결국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해야만 시행착오와 실패, 파국을 피할 최소한의 기회를 얻는다. 권력은 단순히 잡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올바른 사람과,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일을 해야만 의미가 생긴다.
권력과 위대함의 교차로에서 우리는 배운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선택과 책임이 늘 함께 서 있다는 것을. 권력은 흔들릴 수 있지만, 흔들릴수록 방향을 잡는 힘이 생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인간과 시스템, 그리고 역사와 미래가 얽힌 복합적 균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결국 어떤 길을 택할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는 것을.
김영태
은행원,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벤처 창업가, 대기업 임원과 CEO, 공무원 등을 지냈다. 새로운 언어와 생태계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문장을 쓰며 방향을 찾았다. 경영혁신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경험과 성과를 쌓았다. 현재 컨설팅회사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권력의 이동은 단순한 직급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가 얽힌 복합적 과정이었다.
기업과 공공의 세계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권력의 균형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뒤엉킨, 마치 얼음과 물이 맞닿은 경계처럼 미묘했다.
■ 권력의 현실과 상시적 균열
힐러리 맨틀의 소설 '울프 홀(Wolf Hall)'은 권력의 이동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16세기 헨리 8세 궁정, 그 안에서 사람들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계산하고, 더 깊이 숨죽이며 움직인다. 맨틀은 이 책으로 두 번의 맨부커상을 받았고, 세기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토머스 크롬웰이 주인공이다. 청교도 혁명의 올리버 크롬웰과 혼동하기 쉬운데, 다른 인물이다.
토머스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잔혹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상인 수습, 변호사, 외교관을 거쳐 헨리 8세의 곁에 섰다.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는 왕의 정치적 싸움 속, 그는 브레인으로 움직였다.
맨틀은 크롬웰을 이렇게 묘사한다.
"신과 대화할 수는 있지만, 응답을 기대하지는 않는 사람."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갖기 위해, 현실을 우선하는 사람.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생존과 선택의 철학이었다. 그는 상황을 읽고, 사람을 관찰하며, 움직임 하나하나에 계산을 숨겼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작은 손짓 하나에도 권력의 균형이 흔들렸다.
크롬웰은 궁정에서의 미묘한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왕이 어느 날 갑자기 내리는 결정, 신하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 심지어 귀족들이 서로 주고받는 비밀스러운 속삭임까지. 그 모든 것이 권력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변수였다. 오늘의 동맹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한 순간의 침묵이 치명적인 오해를 만들 수도 있었다.
■ 위대한 조직의 위대한 리더
경영학 거장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에서 위대한 조직을 만드는 핵심으로 '레벨 5 리더십'을 꼽는다. 겸손하지만 결단력 있는 리더, 야망과 겸손의 모순적 조합이 조직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계단은 이렇다.
▴레벨1: 유능한 개인
▴레벨2: 헌신하는 팀멤버
▴레벨3: 유능한 관리자
▴레벨4: 효과적인 리더
▴레벨5: 겸손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
레벨 5는, 겸손이 결단력의 또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크롬웰 또한 이 정의에 가깝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연설하지 않으며, 전장에서 깃발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추진력은 숨겨진 폭발력을 가진다. 겸손을 가장한 무서운 의지와 실행력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뒷맛이 씁쓸하다. 박수를 치기 쉽지 않다. 가려져 있다는 느낌, 어둡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그림자 같다. 성공 뒤에 숨어 있는 위험, 힘의 크기에 따라 늘어나는 그림자 말이다. 권력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 먼저 '사람'을, 그 후에 '무엇'을
콜린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먼저 사람을, 그리고 난 후에 무엇을(First who, then what)."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가 먼저라고 한다. 잘못된 사람을 조직의 버스에 태우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실패한다. 인재 버스 문제는 현실에서 훨씬 복잡하다. 누구를 얼마나 빨리 내려보낼 것인가, 그 한 가지가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크롬웰도 원칙에 맞게 움직였다. 왕의 의중을 읽고, 알맞은 사람을 제자리에 앉혔다. 앤 불린 지지파를 배치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며 권력의 균형을 설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람을 모았으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남았다. 권력자의 변덕으로 앤 불린은 몰락했고, 크롬웰도 함께 무너졌다.
■ 오너의 3심, 그리고 현대의 리더십
현대 조직에서도 권력자의 변덕은 존재한다. 오너의 욕심(慾心), 의심(疑心), 변심(變心)—'3心'에 따라 조직이 흔들리고, 뛰어난 경영진을 배치했어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권력을 잡지 못하면,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잃는다.
현대 기업에서는 회장 한 사람의 결정이 수천 명의 운명을 흔들기도 한다. 회장의 아바타 CEO가 바뀌면서 전략 방향이 바뀌고, 중간 관리자들이 갈팡질팡하는 상황도 흔하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조직은 분산된 권력 구조, 주주, 이사회, 시장 평가라는 필터를 통해 리더십을 시험받는다. 한 사람의 변덕만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크롬웰은 묻는다.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콜린스가 질문한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두 질문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겹치고, 이어지며, 결국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해야만 시행착오와 실패, 파국을 피할 최소한의 기회를 얻는다. 권력은 단순히 잡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올바른 사람과,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일을 해야만 의미가 생긴다.
권력과 위대함의 교차로에서 우리는 배운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선택과 책임이 늘 함께 서 있다는 것을. 권력은 흔들릴 수 있지만, 흔들릴수록 방향을 잡는 힘이 생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인간과 시스템, 그리고 역사와 미래가 얽힌 복합적 균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결국 어떤 길을 택할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는 것을.
김영태
은행원,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벤처 창업가, 대기업 임원과 CEO, 공무원 등을 지냈다. 새로운 언어와 생태계를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문장을 쓰며 방향을 찾았다. 경영혁신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경험과 성과를 쌓았다. 현재 컨설팅회사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