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일의 별세 7주기가 됐다. 사진은 2018년 11월4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81)씨의 빈소. /사진=머니투데이


2018년 11월4일 '한국 영화의 전설' 배우 신성일이 81세의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됐다.

신성일은 2017년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받으며 회복에 힘썼다. 그러나 사망 전날부터 병세가 악화했고 끝내 전남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성일은 폐암 진단 후에도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대 '최고 미남' 스타에서 정치계 입문까지… 화려했던 일대기

1937년생인 신성일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데뷔와 함께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신성일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신성일은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이다. 이후 청춘물과 멜로, 시대극을 가리지 않고 주연을 도맡았고 대중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60~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한 최고의 스타가 된 신성일은 무려 52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길소뜸'(임권택 감독) '내시'(신상옥 감독)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 '안개'(김수용 감독) '장군의 수염'(이성구 감독) '초우'(정진우 감독) '휴일'(이만희 감독) 등이 있다.

1964년에는 '로맨스 빠빠'로 인연을 맺은 배우 엄앵란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하객과 시민 4000여명이 몰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신성일은 정계에도 진출했다. 그는 자신의 본래 성(강)과 예명(신성일)을 합한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마포구에 한국국민당 후보로 출마했다. 다만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재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동구에서 당선돼 의정 활동했다. 2001년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냈다가 17대 총선에는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해 불출마했다.


고인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영화계에 꾸준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2017년 폐암 말기 투병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사망 한 달 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건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돌연 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일은 TV조선 '마이웨이'를 통해 폐암 투병과 회복 중인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대중의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신성일은 현재 노년을 보냈던 경북 영천 성일각에서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