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격화된 한국형 핵잠수함 개발을 두고 건조 장소 선정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리조선소를 지목했지만 기술력과 인프라 차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사진=대통령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된 한국형 핵잠수함(핵잠) 개발을 두고 건조 장소 선정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필리조선소를 지목했지만, 기술력과 인프라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 역시 국내 건조가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HD현대가 협업 의지를 내비치면서 핵잠 협력 결과 발표에 관심이 모인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4일 한국의 핵잠 도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린다"며 "군 당국이 최선을 다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데 따른 후속 절차를 뒷받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핵잠의 연료 주입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라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조선소는 한화오션이 미국 현지에서 운영 중인 조선소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핵심으로 꼽힌다. 하지만 설비 대부분이 상선 위주로 핵잠 건조에는 부적합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원자로 탑재를 위한 전용 설비와 숙련 인력 부족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

한화오션은 지난 8월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지만 핵잠 건조에 필요한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잠이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경우, 투입 자금과 공정 기간은 늘어날 수 있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필리조선소는 수상함 건조 설비만 갖춰져 있다"며 "한화오션이 50억달러를 투자해 핵추진 잠수함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잠 건조는 사업 규모가 크고 상징성이 큰 만큼, 필리조선소가 최종 후보로 선정될 경우 한화그룹이 관련 투자와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합동 프로젝트 가능성도 거론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3일 컨퍼런스콜에서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단일 조선소의 기술력과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대규모 프로젝트"라며 "정부 차원의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최근 HD현대미포와의 합병을 통해 건조 역량을 확대한 만큼 잠수함 건조 능력도 확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K조선 원팀'으로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 입찰에 공동 참여하고 있는데 핵잠 분야에서도 양사 간 협력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형 핵잠 개발을 위해서는 조선소 선정 외에도 핵연료 조달 방식,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이 때문에 미국의 건조 승인을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수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핵잠 건조는 아무리 서둘러도 15년 이상 걸리는 장기 과제"라며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필리조선소에서 핵잠 건조를 승인하고 이를 제조업 부흥 성과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 정부 역시 핵잠의 국내 건조가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빠르면 금주 중 핵잠 협력 논의가 담긴 한미 공동 팩트시트 결과가 발표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실현 가능성을 논의하기보다 외교적 성과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자주국방을 위한 숙원 사업이었던 핵잠 건조를 미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문에서도 실질적 협의가 진척될 경우 에너지 안보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