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운동은 '달리기'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 전국 곳곳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수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든다. 관련 업계가 아니더라도 홍보와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선 "달리기 대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대회마다 많은 사람이 참가하며 열정을 보이는 데는 참가자에게만 주어지는 '완주 메달'과 함께 '기념품'(굿즈) 때문이기도 하다. 특정 대회에 출전했다는 '증표'인 만큼 고난(?)을 함께 겪었다는 점을 과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많은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더라도 정작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수만 명이 한데 모이는 자리인 만큼 운영의 디테일과 투명성에서 성패가 엇갈린다. 출발과 도착지점에서의 콘텐츠는 기본, 코스 관리가 허술하거나 기록 측정이 불명확하면 아무리 화려한 굿즈를 내세워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더구나 큰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통제하는 등 제약사항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점은 누군가에겐 축제가 아닌 고통이 될 수 있다.


주식시장도 비슷하다. 코스피가 4000을 넘어서며 조만간 5000도 돌파할 것처럼 여겨지며 이른바 '돈 복사기'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종목별, 기업별 차이가 극명하다. 어떤 곳은 주가가 훨훨 날지만 어떤 곳은 '믿을 수 없다'며 투자자들이 외면하기도 한다. 이 차이는 '투명성'에서 기인한다. 기업의 재무제표는 시장과의 약속이자 신뢰의 증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업들 사이에선 '감사 비용'을 말 그대로 '비용'으로만 보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감사인 선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가 경쟁'은 기업과 회계법인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의 질은 떨어지고 회계 부정 리스크는 커지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 손실에 따른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여러 기업 관계자를 만나다 보면 "감사 비용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불만을 듣게 된다. 이는 감사가 단순히 숫자 검증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과정이라는 인식 부족에 따른 착각일 뿐이다.

감사는 '돈이 드는 통제'가 아니라 '신뢰를 담보하는 투자'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은 회계감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비용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지키는 보험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감사 품질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기업 신용등급과 직결된다.


감사 비용을 아끼는 건 마라톤 대회에서 급수대를 건너뛰는 것과 같다. 당장은 몇 초, 몇 분의 시간을 단축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완주하기 어렵다. 결국 투명한 회계와 충실한 감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체력을 유지하는 '물'과 같다.

맑은 물처럼 투명한 회계 문화가 뿌리내리려면 제도와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감사인을 '파트너'로 대하고 회계법인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금융당국도 감사 품질에 따른 차등 제도나 인센티브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달리기 불패'의 시대, 건강한 대회는 참가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운영에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코스피 불패'의 시대를 이어가려면 기업들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투명 회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감사 비용은 '추가된 비용'일까 신뢰를 위한 '투자'일까. 한국 자본시장의 완주는 그 선택에 달렸다.

박찬규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