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20일 남산 외인아파트가 철거됐다. 사진은 폭파 해체되고 있는 남산 외인아파트의 모습. /사진=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1994년 11월20일 남산 외인아파트가 불과 15초 만에 굉음과 함께 철거됐다. 남산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남산 외인아파트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저앉았다.

명당 아파트, 왜 미관 논란의 중심이 됐나

남산 외인아파트는 1970년 착공해 1972년 완공됐다. 뒤로는 남산이, 앞으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입지 덕분에 장기 체류 외국인과 용산기지 주한미군이 선호하는 주거지였다.


1960년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정부와 기업은 선진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수많은 외국 전문가를 초청했다. 하지만 시내 호텔과 외국인 전용이던 힐탑아파트만으로는 장기 체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결국 국가 차원에서 외국인 전용 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아파트의 역할과 입지 장점에도 남산 중턱을 가로막는 고층 건물이라는 비판은 1980년대 후반부터 거세졌다. 남산은 조선시대 봉화의 출발점이자 해방 이후 도심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다. 시민사회에서는 남산을 공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남산 경관을 가리는 외국인 전용 아파트는 거부감의 대상이 됐다.
사진은 폭파 해체되고 있는 남산 외인아파트의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KTV 아카이브'


서울 남산, '화려한 변신'

1990년대 서울시는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을 본격화했다. 수도방위사령부 등 군부대 이전과 공원화 계획이 추진되면서 외인아파트 철거가 결정됐다. 서울시는 논란을 종결하기 위해 폭파 방식을 선택했고, 예고된 철거 순간을 지켜본 시민 수만 명은 붕괴가 예정대로 이뤄지자 환호를 터뜨렸다.


철거 후 잔해는 신속히 정리됐다. 부지는 서울시가 매입해 식물원으로 조성됐고, 일부 자재는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에 재활용됐다. 22년 동안 남산 남쪽을 차지했던 외인아파트는 이렇게 서울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