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에도 사망자 증가… 현장선 '유인책 병행' 목소리
'사전 예방' 싱가포르식 인센티브 제도 대두
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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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지난 3분기 현장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건설업계는 규제와 처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기업이 예방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싱가포르식 인센티브 제도 같은 유인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4일 고용노동부의 2025년 3분기(누적) 산업재해 부가통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잠정치에 따르면 이 기간 산재로 인한 누적 사망자는 457명으로 전년 동기(443명) 대비 14명 증가했다. 사고 건수 역시 411건에서 440건으로 늘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2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의 대응에도 사망자는 오히려 증가세다.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나섰다. 최근 3년 내 영업정지 처분이 3번 이상 발생한 건설업체의 등록말소 요청 규정을 준비중이다.
영업정지 요건도 기존의 '단일 사고 2명 이상 사망자'에서 '연간 다수 사망자' 발생으로 확대하고 현행 최대 5개월까지 가능한 영업정지 기간 역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과징금제도도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시 최소 30억원 이상, 최대 영업이익의 5%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도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인사를 단행하고, 안전관리 비용을 확대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강화되는 규제와 처벌 탓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업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공사 현장에선 아무리 관리해도 막기 어려운 사고들이 여럿 존재한다"며 "고강도 규제와 처벌 중심 정책은 오히려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동기부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업계에선 규제·처벌 중심의 접근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송진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산업정책실장은 "그동안 정부는 규제와 처벌을 중심으로 산업재해 예방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이젠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의 '사전 예방' 정책 패러다임 변화…국내 도입된다면
패러다임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싱가포르가 꼽힌다. 2004년 니콜고속도로 터널 공사현장 붕괴사고로 근로자 4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싱가포르는 '사후 처벌' 중심이던 정책을 '사전 예방'으로 변환했다.
인센티브 제도가 핵심이다. 싱가포르는 건설청(BCA), 주택개발청(HDB) 등 발주처를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법(WSH Act) 보너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5000만싱가포르달러(약 569억원) 이상의 공공공사에 참여하는 시공사가 우수한 안전관리 성과를 내면 공사 계약액의 최대 0.5%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벌점 제도도 병행했다. 안전점수 미달 시 입찰 참여를 제한시키는 등의 처벌과 인센티브 제도가 균형을 이루면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냈다. 아울러 현장 근로자들도 처벌받을 수 있게 해 근로자도 안전 예방의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사고 발생률은 꾸준히 감소했다. 싱가포르의 산업안전보건청(WSH)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대 사고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는 10만 명당 0.92명에 불과했다. 제도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2004년(4.9명)과 비교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국내 건설업체들도 기업이 스스로 예방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관리 모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가 병행된다면 기업들도 안전관리에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현재 정부 정책은 건설업계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기업의 자발적 예방 활동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 도입을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무재해 실적이나 안전투자 우수사례 등에 대해 세제 혜택과 공공 입찰 인센티브 제공 등의 지원 제도를 규제와 병행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장기적인 인센티브 제도보다 현장의 시급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 실장은 "인센티브 제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급한 것은 외국인 근로자 비자 문제"라며 "현장 고령화로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충분히 숙련된 인력이 비자 문제로 강제 출국해야 하는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발주처와 시공사 간 공사비·공사기간을 시공 중에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장에서 바로 필요한 변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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