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 사옥/사진=이지스자산운용


중국계 사모펀드로 알려진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된 운용사를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기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여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어서 인수전 향방에 관심이 모인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운용 지분 약 98% 매각 작업이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당초 최대주주 손화자 씨 등 70% 지분이 대상이었으나 소액주주까지 합류하며 규모가 확대됐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가 주관한 지난달 본입찰에서는 흥국생명이 1조500억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재입찰)' 과정에서 싱가포르 사모펀드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1조1000억원을 제시하며 판세를 뒤집었다.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은 추가 상향 없이 본입찰가를 유지 중이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 힐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최종 결정을 위한 '키'는 금융위의 손에 있다. 자산운용사 대주주 변경은 금융위 승인이 필수다. 재무 건전성, 지배구조 투명성 등을 심사하는데, 공적 자금 비중이 큰 만큼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지스운용은 국민연금·공제회 등 공적 자금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국내 1위 부동산 운용사다. 2010년대 초 독립계로 출발해 연기금 자금 유치를 발판으로 급성장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한 운용사 매각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 관리인을 바꾸는 문제"라며 "해외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잡으면 단기 수익에 치중해 안정적 운용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예컨대 2003년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인수해 2012년 3조9157억원에 매각하며 4조70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은행의 장기 성장보다 고배당으로 이익을 빼가는 데 집중했고, 금융당국은 속수무책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힐하우스 역시 2023년 SK에코프라임을 인수한 첫해 순이익 160억원에 불과했는데도 배당금 700억원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순이익의 4배를 넘는 금액을 배당으로 가져간 사모펀드 특유의 단기 수익 극대화 방식이 드러난 사례다.

최근 쿠팡 사태로 인해 중국계 자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지난달 쿠팡에서 3370만명 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 사건은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이 회사를 떠난 후에도 방치된 인증키를 악용해 대규모 고객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국회와 시민단체에서는 중국계를 비롯, 해외 자본의 국내 중요 기관 인수에 대한 경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힐하우스의 창업자 장 레이(張磊) 회장은 중국 태생의 싱가포르 국적자다. 2005년 미국 예일대 기금 2000만달러를 받아 회사를 설립했지만, 텐센트·징둥닷컴 등 중국 빅테크에 초기 투자하며 성장했고 중국 자금도 상당 부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스운용 관계자는 "힐하우스 창업자가 중국계라서 중국자본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중국 태생은 맞지만 현재 싱가포르 국적이고, 힐하우스 설립도 미국 예일대 자금을 받아 했기 때문에 단순히 중국자본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 힐하우스는 한국에서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컬리, 크래프톤 등에 투자해온 글로벌 운용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설립 배경과 별개로 중국 자금을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계 자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지스운용 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지 않았다"며 "사내에선 특정 인수자에 대한 선호나 불호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