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늪' 이지스운용 매각… 법적조치 예고에 국민연금 반발도
국민연금, 사전 동의 없이 보고서 공개에 항의
흥국생명 "힐하우스 선정 강력 유감"
이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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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울 것 같던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작업이 암초에 걸렸다. 인수 의향을 보인 흥국생명이 법적 조치를 불사하고 나선 데 이어 국민연금까지 매각 과정을 문제삼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
1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일부 매체는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출자한 자금 전액 회수 가능성까지 보도했다. 국회에서도 외국계 사모펀드의 국내 기업 인수를 제한하려는 입법이 논의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지난 8일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를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힐하우스는 '프로그레시브 딜'을 통해 인수 희망가로 1조1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인수합병 과정에서 일정 금액을 제시해 본입찰을 통과한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가격 경쟁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경매 호가식 입찰로도 불리며 최종 낙찰자가 나올 때까지 가격을 높일 수 있다.
힐하우스는 당초 9000억원대를 제시해 최고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본입찰 후 주관사 측이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해 인수가를 상향했고 경쟁자인 흥국생명이 써낸 1조500억원과 한화생명의 9000억원대 후반을 넘겨 거래를 성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흥국생명이 반발하고 나섰다. 9일 흥국생명은 강한 유감을 표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흥국생명 측은 입장문에서 "이번 매각은 공정하지도 않았고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당초 주관사는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회사는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제시해 인수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흥국생명은 "그러나 우선협상자 발표가 미뤄지더니 힐하우스 측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해 인수 희망가를 높였고 본입찰 27일 만에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는 한국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사모펀드와 외국계 매각 주관사의 합작품"이라며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에 질서를 무너뜨린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입찰 과정에서 나타난 기만과 불법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입찰에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법적 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민연금도 이번 인수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출자한 펀드 관련 보고서를 사전 동의 없이 원매자들에게 공개한 점을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출자금을 전액 회수할 수도 있음이 언급됐다고 한다.
다만 원매자들에게 공유된 보고서에는 국민연금이 출자자라는 정보는 담기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펀드의 설정액과 평가액, 그리고 관련 이슈 정보가 담겼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펀드 실사 과정에서 일부 기본 정보가 투자자가 특정되지 않은 채 회계법인에 제출된 것은 맞다"면서 "이로 인해 대표이사가 9일 국민연금을 방문해 설명했다"고 했다. 다만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과 같이 국민연금 자금의 회수 검토에 대해서 회사 측은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바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보도 내용은 인지하고 있으나 원칙상 확인해 드리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처럼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가 험난한 미래를 예고한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최근 논란이 된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및 고려아연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외국계 사모펀드를 규제한다는 점에서 중국계 사모펀드인 힐하우스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10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자본시장법과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사모펀드의 과도한 차입 매수를 규제하고 국내 회사라도 외국 자본의 지배적 영향력 아래에 있을 시 국가 핵심기술 보유 기업의 인수 합병을 제한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김 의원은 개정 취지에서 "일부 악성 사모펀드가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며 자신들의 배만 불려온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며 "법이 개정되면 건전한 인수·합병 환경 조성과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산업과 국가 핵심기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힐하우스는 반발 여론을 인식한 듯 10일 입장문을 내고 투명한 절차와 규정 준수를 강조했다. 이날 힐하우스는 "거래의 전 과정에서 투명성과 준법을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이라면서 "모든 절차에서 매각 주관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지켰다"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규제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거래를 이어 나갈 방침"이라면서 "이지스자산운용의 전문성과 시장의 통찰에 글로벌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더해 더 큰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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