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은행권이 18일 오후 제재심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이다./그래픽=머니S 강지호 기자


18일 오후 열리는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제재심에서 은행과 금감원의 치열한 논리 공방이 예상된다.

은행들은 자율배상과 판매 프로세스 개선, KPI(성과지표) 조정 등 사후구제 노력을 근거로 과징금 경감을, 금융감독원은 이에 불완전판매를 강조하며 맞설 전망이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리는 홍콩 ELS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은행 5곳(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은 ELS로 손실을 본 투자자에게 자율배상(은행 등 판매사가 금융감독원의 배상 기준에 따라 고객의 손실을 자율적으로 보상하는 절차) 등 사후구제를 위해 노력한 점을 적극적으로 소명할 예정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자율배상에 총 1조3437억원(국민 6959억원, 농협 2527억원, 신한 1865억원, 하나 1093억원, SC제일 993억원)을 지급하고 합의율도 96.1%를 기록한 것을 사후구제 이행 자료로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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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은행들은 금감원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 관행에 맞춰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등 조직을 확충하고 CCO(소비자보호담당임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점 등을 적극적으로 소명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홍콩 ELS 사태 이후 은행들은 투자성상품의 사후 모니터링 항목 추가, 판매 한도 관리기준 강화 등 고위험상품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KPI설계도 단기실적보다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자율배상 등 조치를 통해 손실을 입은 투자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내부통제 강화로 불완전판매 발생 요소를 최소화 했다"며 "금감원도 사후구제 노력에 따라 과징금 경감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과징금이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은 자율배상으로 지급한 금액이 금감원이 부과한 과징금에 육박하는 규모"라며 "이처럼 은행들이 소비자피해 보상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최대한 참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은행들의 움직임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내세운 금융당국 기조와도 부합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올해 9월 국무회의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선 금융사들이 소비자 본인 투자 성향과 맞지 않는 상품에 가입하려고 할 경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은 '부적정성 판단 보고서'를 작성해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그동안 보고서에는 사유가 간단히만 적혀 있어 소비자가 왜 부적합 판단을 받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금융당국은 개정안 시행을 통해 소비자가 투자위험을 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합리적인 상품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월엔 홍콩 H지수 ELS 현황 및 대책의 일환으로 ELS 등 고난도금융투자상품을 거점 점포에서만 판매하도록 했다.

ESL 판매 거점점포는 별도 출입문 또는 층간 분리를 통해 영업점 내 다른 장소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판매공간을 마련해야 하며 전담 판매직원은 자격요건과 일정 기간 이상의 상품 판매경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소비자의 투자성향 파악을 위해 6개 필수확인 정보, 점수방식 및 추출방식 등을 활용해 적합성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 사전에 정한 ELS 상품 판매 대상 고객에 해당할 경우 해당 상품을 권유할 수 있도록 했다.

금감원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강조할 것"

은행권의 ELS 사후구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제재심에서 금감원은 ELS 사태의 원인이 은행들의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에 있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ELS 등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에게 손실 위험, 수익 구조, 투자 적합성 등 핵심 정보를 명확히 설명하고 설명서를 교부·확인해야하지만 상당수의 영업점이 이를 위반했다는 게 금감원 지적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은행이 과거 20년간 손실률 등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거나 왜곡해 설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이날 제재심 이후 은행권에 부과한 2조원대 과징금이 줄어들지 주목하고 있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소법 위반행위와 관련한 과징금 부과기준율은 매우 중대한 사안은 65~100%, 중대한 사안은 30~65%, 경미한 사안은 1~30%를 반영한다. 과징금 법정 상한은 판매금액의 50%다. 충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이행하고 피해를 적극 배상하는 등 사후구제 노력이 인정되면 기본 과징금의 최대 75%까지 줄일 수 있다.

현재 업계에선 5개 은행의 홍콩H지수 ELS 불완전판매 행위는 감독 규정 세부평가기준표상으로 1.7점을 받아 중간 단계인 '중대한 위반행위(1.6점 이상 2.3점 미만)'로 분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위험 상품을 부적합 고객에게 권유하는 등 내부통제가 미흡했던 사례가 다수 밝혀졌다"며 "신속한 피해 구제와 시장 신뢰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단위 제재, 자본건전성에 타격으로

조 단위 제재가 현실화 할 경우 은행권의 자본건전성에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은행은 과징금을 내면 그 금액의 6배를 운영 리스크로 인식해 10년 동안 RWA(위험가중자산)으로 쌓아야 한다. 금감원의 사전 통보대로 과징금 규모가 2조원으로 확정되면 그만큼 자본금이 증발할 뿐 아니라 RWA 12조원이 추가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은행 모회사인 금융지주 CET1(보통주자본비율)도 총 1%포인트가량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ELS 제재는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금융당국의 강경한 입장을 보여주는 첫 '리딩 케이스'라는 상징적인 부분이 있다"며 "사후구제 노력은 어느 정도 참작하겠지만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 손실에 대해선 명확히 짚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징금 경감은 금융위원회 권한이어서 금융위가 최종 규모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