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전문성과 검증된 리더를 핵심 요직에 임명하며 미래 모빌리티 청사진을 구체화했다. 사진은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역대급 실적에 안주하지 않고 인적 쇄신을 통한 '초격차' 전략을 택했다. 미국 관세 리스크·글로벌 수요 둔화·공급망 불확실성이라는 단기 변수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과와 전문성이 검증된 리더를 핵심 요직에 전면 배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18일 만프레드 하러(R&D본부장)·정준철(제조부문장)·윤승규(북미권역본부장)·이보룡(현대제철 생산본부장)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하고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신규선임 176명 등 총 219명의 승진을 포함한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SDV 전환의 핵심 축인 R&D와 제조 부문 수장의 동반 격상이다. 만프레드 하러 R&D본부장과 정준철 제조부문장이 각각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SDV 전략은 조직상 최상위 의사결정 레벨로 끌어올렸다.


하러 사장은 2024년 현대차그룹 합류 이후 짧은 기간에도 차량 기본 성능과 주행 감성 개선, 브랜드 정체성 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SDV 경쟁에서 소프트웨어 역량 못지않게 '차량 본질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그룹 내부 판단과 맞닿아 있다.

AVP 본부장 공백 상황에서도 SDV 전략의 연속성을 강조한 점이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은 송창현 전 사장 주도로 구축된 SDV 개발 전략,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 자율주행 기술 '아트리아 AI'의 기술 내재화를 토대로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진 왼쪽부터 만프레드 하러 R&D본부장, 정준철 제조부문장, 윤승규 북미권역본부장, 이보룡 현대제철 생산본부장. /사진=현대차그룹


제조 혁신 없이는 SDV도 없다… SDF·로보틱스 전면 배치

정준철 사장은 완성차 생산기술을 담당하는 제조솔루션본부와 구매본부를 동시에 총괄하며 수익성과 공급망 관리까지 책임져 온 인물이다. 향후 현대차그룹의 제조 경쟁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유연하게, 얼마나 빠르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과 로보틱스 기반 차세대 생산체계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모델 변경과 기능 업데이트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유연성을 의미한다. SDV 시대에는 하드웨어 변경 없이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반복되기 때문에 제조와 개발의 경계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제조 책임자를 사장급으로 격상한 것은 이러한 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을 그룹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다.

국내 생산담당에 제조기술 엔지니어 출신 최영일 부사장을 배치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생산거점이 다변화된 상황에서 국내 공장을 '마더 팩토리'로 재정립해 기술 표준과 생산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기아 북미권역본부장 윤승규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현대차그룹의 성과 중심 인사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미 시장은 현대차·기아의 최대 수익원인 동시에 전동화 투자와 SDV 개발 자금을 책임지는 핵심 시장이다.

윤 사장은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도 북미 소매 판매를 전년 대비 8% 이상 성장시키며 실적을 방어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과 전기차 수요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판매·수익성을 동시에 관리한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인사 '방어'와 '전환'의 병행… 40대 상무 대거 발탁

계열사 인사에서도 같은 기조가 이어졌다. 현대제철은 이보룡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기술·생산 중심 체제를 강화했다. 철강 업황 둔화와 대규모 설비 투자가 병행되는 상황에서 연속성과 실행력을 중시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반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위기 국면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낸 기존 최고경영자(CEO)를 승진시키며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서강현 전 현대제철 사장을 그룹 기획조정담당으로 이동시킨 인사 역시 주목된다. 이는 단일 계열사 경영을 넘어 그룹 차원의 사업 구조 재편과 자원 배분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앞선 사장 승진 4명 이외에도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신규선임 176명 등 총 219명의 승진을 포함한 정기 임원인사를 시행한다.

현대차그룹은 40대 차세대 리더 발탁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2년 연속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는데 기여한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 지성원 전무(만 47세)가 40대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상무 신규선임 대상자 중 40대의 비율도 2020년 24% 수준에서 올해 절반 가까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상무 초임의 평균 연령도 올해 처음 40대로 진입했다. 80년대생 상무로는 조범수 현대차 외장디자인실장(만 42세)과 권혜령 현대건설 플랜트기술영업팀장(만 45세) 등 총 12명이 신규 선임됐다.

사장단 인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 승진 대상자 중 30% 가까이 R&D와 주요 기술 분야에서 발탁·승진시키며 기술인재 중심의 인사철학을 이어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임원 인사를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의 위기를 체질 개선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인적쇄신과 리더십 체질변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며 "SDV 경쟁에서의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인사와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