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몫을 '계약자지분조정'으로 분류해 온 일탈회계 처리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는데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수십조원의 배당금을 부채로 쌓을지 혹은 자본으로 계상해 배당 의무를 사실상 소멸시킬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사진은 지난 10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사진=뉴시스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몫을 '계약자지분조정'으로 분류해 온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처리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삼성생명은 해당 금액을 부채로 쌓을지 자본으로 계상해 배당 의무를 사실상 소멸시킬지 기로에 섰다. 자본으로 처리하면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의 집단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며 배당 재원 마련을 위해선 삼성전자 지분 매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현재 해당 지분의 시장 가치는 약 53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국내 생명보험사는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당금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으로 처리했으나 이러한 일탈회계가 허용되지 않게 됐다. 금감원은 해당 사안을 '회계 오류'가 아닌 '회계 정책 변경'으로 공식 규정해 감리나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삼성생명은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를 주식 등 자산에 투자해 얻은 성과(배당 및 시세차익)를 계약자와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유배당보험 상품을 대규모로 판매했다. 사진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출입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국제회계제도( IFRS17) 하에서는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몫을 보험계약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나 삼성생명은 2022년 금감원으로부터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받았다.

삼성생명은 내년 3월 공시되는 결산 사업보고서부터 해당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업계는 삼성생명이 이를 전액 자본으로 계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어 이익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논리다.


이 금액을 자본으로 처리하면 회계상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배당금은 '0원'이 돼 계약자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법조계는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을 자본으로 분류하는 것은 계약 당시의 신의성실 원칙에 반해 이익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광중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해당 자산을 처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회계적으로 확정하는 것과 다름없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해 계약자 권리 침해 논란이 제기된다"며 "주식을 처분할 수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음으로써 계약자에게 돌아갈 몫을 지급하지 않는 구조 역시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고령화된 계약자들의 '권리 소멸'도 핵심 쟁점이다. 당시 약 138만명에 달했던 계약자들 상당수가 고령층인데 계약자가 사망할 경우 삼성생명의 배당 의무는 사라진다. 권리를 주장할 주체 자체가 사라지는 구조여서 '사실상의 권리 묵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생명은 현실적인 배당 여력이 없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 유배당보험 상품에 연 7% 안팎의 높은 확정 금리를 약속한 탓에 현재 이자 비용과 역마진 부담만으로도 연간 1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부상 평가이익만으로는 천문학적인 배당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유배당보험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을 앞두고 유배당보험 계약자 2800여명은 자산운용 이익을 정산해야 한다며 배당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모두 삼성생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장기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승해 평가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곧바로 유배당보험 계약자에게 배당금 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계약자지분조정 회계 처리에 대한 예외 적용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하면서 회계 기준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은 과거와 달라졌다. 집단소송이 현실화될 경우 과거 판례와는 다른 법적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에는 단순히 '미처분' 상태였다면 이제는 '비처분' 의사가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2010년 소송에서는 자산이 아직 처분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판단 대상이었을 뿐 자산을 영구적으로 처분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법원이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며 "비처분 의사가 회계적으로까지 명확해질 경우 이는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규모는 지난해 9월 분기보고서 기준 12조7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은 그동안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는 만큼 이 가운데 전체 금액의 절반만 배당 대상으로 인정되더라도 삼성생명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지배구조다. 삼성생명이 배당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경우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