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청약 제도는 집값 급등기였던 문재인 정부 시절 공급 신호를 앞당겨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카드로 등장했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청약 기회를 제공해 희망을 주고, 정부로서는 단기간에 공급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속도를 앞세운 정책 실행 과정에서 사업 무산 시 책임 구조와 리스크 관리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급조된 정책의 위험 부담은 자연스레 수요자에게 전가됐다. 2021년 정부는 사전청약을 통해 99개 단지(5만2000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본청약까지 이어진 단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입주 지연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부는 지난해 5월 제도 도입 3년 만에 신규 사전청약을 사실상 폐지했다. 정책이 허술하게 설계됐다는 방증이다.

올 들어 사전청약이 무산된 경기 파주운정3지구의 재입찰 결과는 속도에 쫓긴 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계약을 포기했던 기존 시행사의 관계사가 해당 공공택지를 다시 낙찰받는 과정은 현행 제도 안에서 가능했다. 인창개발은 동일 법인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특수관계 법인을 앞세운 우회 참여에 성공했다. 계약 포기에 따른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당국은 '합법적 재입찰'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정책 신뢰는 크게 훼손됐다. 파주운정3지구의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지난 10월 해약 처리가 끝났는데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기업의 재무 상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투자 여력이 실제로 확보됐는지 믿을 수 없다"며 "과연 사업이 끝까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우려한다.

당시 정부는 대규모 물량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사업을 이끌 시행사의 재무 안정성에 대한 검증은 부족했다. 이행 보증 강화나 사업 포기 불이익 등 계약 이행의 실패에 대비한 책임 구조도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청약 시스템이 청약자의 지위 상실을 너무 쉽게 감내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사전청약은 수요자에게 기다림을 요구하는 제도다. 사전청약 당첨자는 입주까지 통상 5~7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청약 기회를 포기하고 주거 계획을 유예한다. 그럼에도 사업 지연이나 시행사 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사전청약은 기다린 시간만큼 손해가 쌓이고 피해는 뒤늦게 드러나는 지연형 리스크다. 기다림이 비용이 되는 구조에서, 내 집 마련을 기대하며 기다린 이들로서는 제도를 믿고 선택한 시간이 손실로 돌아온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택 정책은 '공급 확대'라는 단일 목표에만 집중해왔다. 어떤 방식의 공급인지,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 공급인지 후순위다. 그 결과 사전청약은 청약 시점을 앞당긴 제도가 아니라 주거 선택권을 장기간 묶어두는 제도로 작동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촘촘한 정책 설계를 통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지탱하는 국가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이화랑 건설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