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단에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추진·경영권 방어 '청신호'(종합)
재판부 "경영상 목적 인정"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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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제련소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던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이 영풍·MBK파트너스의 신주 발행 금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국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는 물론 향후 경영권 구도에서도 최윤범 회장 측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영풍·MBK가 제기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해당 결정을 양측에 송달했다. 앞서 영풍·MBK는 지난 16일 고려아연이 추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관련해 신주 발행을 금지해 달라는 취지로 이사회 결정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유상증자는 고려아연이 미국 내 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 중인 조치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국방부 등과 협력해 총 11조원을 투입,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제련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와 관련해 회사는 현지 합작법인인 크루서블JV를 대상으로 약 2조851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영풍·MBK는 미국 투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상 필요성보다는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구조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투자 재원의 상당 부분이 상환 의무가 수반되는 차입금 성격을 띠고 있어 이를 미국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가처분 신청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유상증자는 해당 프로젝트 추진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경영권 또는 지배권 방어만을 목적으로 한 조치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미국 정부가 참여한 합작법인을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해서도 "다른 자금 조달 대안과 비교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가처분을 기각했다.
재판부 "경영권 방어 목적 단정 어렵다"
법조계는 이번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해당 유상증자가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와 미국 내 전략적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공익적 성격이 함께 인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 역시 이번 제련소 건설 사업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온 점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최근 법원이 기업의 경영 판단에 대해 자율성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기각 전망에 힘을 실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법원은 경영진의 판단이 명백히 위법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이상 기업의 전략적 투자와 사업 판단에 대해 개입을 자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도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 제련소 건설은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으로 본격 착공에 들어가며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해 상업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다. 연간 약 110만톤(t)의 원료를 처리해 54만t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유상증자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리츠증권은 고려아연이 오는 26일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고 200만8716주의 신주를 발행하면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영풍·MBK 측 42.1%, 최 회장 측 18.76%로 집계했다. 여기에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와 신설 합작법인(11.21%), LG화학(1.99%) 등을 합산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0.37%까지 확대된다.
이에 내년 3월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풍·MBK 측이 다수의 신규 이사를 선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고려아연은 이사회 구성에서는 우위를 유지해왔지만 지분율에서는 영풍·MBK 측에 크게 뒤처져 시간이 지날수록 주도권이 영풍·MBK로 넘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윤범 회장 측 11명, 영풍·MBK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양측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인 만큼 최 회장 측이 당분간 이사회 과반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한편 고려아연은 법원의 판단에 대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회사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크루셔블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추진해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핵심 광물 공급망의 중추 기업으로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경제 안보 강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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