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을 닮은 불(丙)이 떠 있고 땅 위에는 역동적인 기운의 말(午)이 달린다. 이른바 '붉은 말의 해'다. 명리학적으로 병오는 그 기운이 매우 강렬해 정체된 흐름을 깨부수고 폭발적인 추진력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가만히 앉아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기보다는 거친 들판으로 나가 직접 기회를 낚아채야 하는 운명적인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이 화려한 기운을 온전히 받아내기에 너무도 위태롭고 무겁지만 말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불협화음은 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다. 코스피와 코스닥 등 종합지수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치솟고 있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여전히 얄팍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장주들은 HBM4(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양산을 앞세워 '200조 원 이익 시대'를 열고 있지만 온기는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 AI 기술의 확산은 기업의 실적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나 이면에는 일자리를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한숨이 서려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는 이제 극복 불가능한 고착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산업 지형 격차는 극명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온디바이스 AI' 열풍을 타고 성장세다. 로봇 산업도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행동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한때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철강과 석유화학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구조적 침체에 빠졌고 이차전지는 미국의 정책 변화와 전기차 캐즘(Chasm) 여파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외 여건도 '안갯속'이다. 자국 우선주의와 패권 전쟁으로 점철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는 글로벌 정치·경제 지평을 뒤흔들 최대 변수다. 선거 전후로 몰아칠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는 앞길을 막는 깊은 늪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상황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정부와 여당은 공천헌금과 갑질 논란 등 도덕성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정책 추진력을 잃었다. 지지율의 높고 낮음을 떠나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개혁의 동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야권 역시 대안이 되기엔 부족해 보인다. 내부 세력 다툼과 '마이웨이'식 행보에 매몰돼 민생은 뒷전으로 밀어 놓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을 노리는 이들의 정치적 수사도 난무하니 정국은 혼란의 도가니가 될 공산이 크다.

2026년 병오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무엇이든 뚫고 나갈 것 같은 뜨거운 열정도 피어나겠지만 그 열정마저 얼려 버릴듯한 차가운 현실도 함께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주변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저앉아 있을 여유도 없다.


역사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길을 찾는 자들의 것이었다. 병오년의 뜨거운 불길은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재앙이 되겠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강철을 벼리는 제련의 불꽃이 될 수 있다. 차가운 현실을 돌파하는 힘은 결국 뜨거운 실행력에서 나온다. 붉은 말의 고삐를 꽉 쥐고 성취라는 결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홍정표 부국장 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