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마다 '국민 통합'을 외쳤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치가 갈등을 부추기고 정책적 무능을 가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사진은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어가는 12월의 밤 국회의사당이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대한민국 정치는 '1찍'과 '2찍'이라는 배타적 꼬리표 속에 갇혀 있다. 선거 기호에서 유래한 이 별칭은 우리 사회의 극단적 분열을 상징한다. 역대 정부마다 '국민 통합'을 외쳤지만 현실은 정치가 갈등을 부추기고 정책적 무능을 가리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정치권의 극한 대치에 울린 경종이었다. 헌재는 야당을 국정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해 불법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꾸짖었다. 다수 의석을 무기로 협치를 외면한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도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치권발 균열은 국민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위기감도 임계점을 넘어섰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응답자의 86%가 우리 정치가 극심하게 양극화돼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계엄 사태를 겪으며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됐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77%에 달해 계엄 사태가 서로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촉매제가 된 것으로 관측된다.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문제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사에서 응답자의 57.8%는 1년 후 정치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화될 것이라는 낙관론(19.7%)을 세배 가까이 앞지른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힌 20대 여성 김 모씨는 "(현재를) 사실관계조차 합의되지 않는 시대"라며 "대화가 막힌 사회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초적인 팩트조차 진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니 정책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 세계 정치 슈퍼챗 상위 10개 중 6개가 한국

정치가 실종된 빈자리는 스마트폰과 셀카봉으로 무장한 정치 유튜버들이 빠르게 점령했다. 사진은 보수 성향 유튜버 '신의한수' 신혜식씨가 지난해 11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의 배후 수사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전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치가 실종된 빈자리는 스마트폰과 셀카봉으로 무장한 정치 유튜버들이 빠르게 점령했다. 이들의 중계 화면에는 '빨갱이' '매국노' 같은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하고 실시간 채팅창에는 증오를 동력 삼은 후원금(슈퍼챗)이 쏟아진다. 이른바 '슈퍼챗 정치'가 한국 정치의 배후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 정치 유튜버들이 슈퍼챗으로 거두는 수익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많다. 플레이보드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뉴스·정치 부문 슈퍼챗 수익 상위 10개 채널 중 6개가 한국 채널이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비롯해 매불쇼, 사장남천동, 뉴탐사, 신의한수 등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 정치가 위험한 까닭은 사람들을 조직하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동력이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서 나와서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거짓에, 공감보다는 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격분한 반론을 담은 게시물이 일반 콘텐츠보다 '좋아요'와 '공유'를 두배 가까이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논 바 있다.

증오 정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리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관용과 다원주의도 갉아먹고 있다. 공포를 동력 삼아 법질서만을 앞세우는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면서 민주적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그 단면이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 재판을 맡은 지귀연 부장판사를 향해 '화교 출신 스파이'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증오 정치를 권력 유지의 도구로 활용해 온 정치인들조차 이제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정치적 주도권은 합리적 리더십이 아닌 극단적 팬덤에게 넘어가게 됐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양 극단에 치우친 지지층과 결탁하는 정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도박"이라며 "정치인이 극단 정치에 기대어 얻는 단기적 효능감은 크지만 결국 본인의 정치적 신념 대신 팬덤의 입맛에 맞춘 정치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분석했다.

정치 양극화의 책임을 정치권과 유튜버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유권자 역시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정치인이 설계한 프레임과 선동에 동조하며 갈등을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대구·경북(25석), 더불어민주당이 호남(28석)을 사실상 싹쓸이한 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지역주의와 진영 논리에 묶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