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멘트업계가 경기 불황에 고전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레미콘 공장에서 작업 차량이 시멘트를 옮기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전쟁 이후 건설업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시멘트업계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삼표시멘트, 성신양회, 쌍용C&E, 아세아시멘트, 한라시멘트, 한일시멘트 등 주요 기업들이 전방산업 부진 속 환경 규제 비용 부담,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발표된 건설수주액과 건설기성액(공정률에 따라 기간별로 분할 수취하는 공사비)는 전년동월 대비 각각 9.2%, 17% 하락했다. 건설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후방산업인 시멘트 업계도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도 한때 시멘트 내수 판매가 1만톤까지도 갔었지만 건설경기 둔화 여파로 지금은 대폭 줄고 있다. 우리도 관련 시장이 일본과 비슷하게 부진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 시멘트사 관계자는 "(내수량이) 늘어날 여지가 전혀 안 보인다. 아마 시멘트, 레미콘, 골재 등 대부분 자재사들은 같은 흐름을 탈 것 같다"며 "건설사는 해외에서 수주라도 하지만 저희는 100% 내수다. 작년 수준만 유지해도 다행"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시멘트 내수량은 3650톤으로 1990년 이후 34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업계가 예상한 올해 시멘트 내수량은 3600톤으로 지난해보다 더 적다. 업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 없다는 진단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된 원인은 달러 강세와 운송료 증가다. 국내 업계는 시멘트의 원료인 유연탄을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면 원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올해부터 부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부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낮은 운임으로 인한 화물 운송시장의 과로, 과적, 과속 운행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 운수 종사자(화물차주)와 운수사업자가 받는 최소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시멘트 품목의 경우 화물차주가 지급받는 안전위탁운임은 16.8%, 화주가 지급하는 안전운송운임은 17.5% 수준으로 인상됐다. 이에 시멘트 운송료가 예년보다 1.3~1.5배 정도 늘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시멘트 업계가 기후환경에너환경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공감하지만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김성환 환경부 장관. /사진=뉴스1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규제 압박도 부담이다. 환경부는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순배출량 대비 53~61%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멘트 업계도 공해 예방을 위한 설비를 구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막대한 지출이 예상된다.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정부 규제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규제 강화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속도 조절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업황이 어려워서 설비나 재원 조달이 쉽지 않다"며 "정부 측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에서 질소산화물 저감 장치(SCR) 가동 시연회를 열었다. SCR은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저감에 효과적인 방지시설이다. 실제로 효과는 좋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SCR 설치 비용은 1기당 300~400억원으로 알려졌다. 설치 후 운영비도 연간 60억원 이상 필요하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SCR이 효과가 좋다고 들었다"며 "탄소 저감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안 할 순 없지만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밝혔다. 이어 "설비를 큰맘 먹고 설치해도 유지비가 많이 든다"며 "정부와 여러 가지로 조율 단계에 있는데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시멘트 가격을 섣불리 올리지도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상승할만한 요인은 있는데 건설 현장 자체가 줄고 있어 단가를 올리기 어렵다"며 "레미콘 업계도 판매처가 없어서 적자를 보고 가격 경쟁 중이다. 저희도 상황은 매한가지"라고 밝혔다.
시멘트업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 운송비 부담 가중, 저감 설비 투자 비용 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사진은 경기 안양시 한 레미콘 공장. /사진=뉴스1


전문가들도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임남기 동명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설업 자체가 생산에서 유지 관리 중심으로 가고 있어서 발주 물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며 "친환경 대체제 등도 나오고 있어 업계가 조금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멘트는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고 품질도 좋다"며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건설 경기를 지탱하는 관련 업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세심한 감독과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는 "시멘트업계도 탄소 중립과 관련해 저감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탄소 중립이 세계적인 추세인 만큼 외부 기술과 융합을 통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올해도 건설경기가 회복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고 더 이상 시멘트 수요가 한국전쟁 후 처럼 크게 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미시적 정책이 아닌 경기 전체를 부양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