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1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2차 종합 특검법)이 재석 174인 중 찬성 172인, 반대 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뉴스1


국회의 입법 역량을 넘어서는 의원들의 과잉 법안 발의의 배경엔 시민단체들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일부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 평가 때 법안 발의 건수와 같은 정량 지표를 반영하면서 질보다 양 중심의 법안 발의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매년 연말이 되면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 의정활동 순위 등을 발표하고, 높은 평가를 받은 의원들은 이를 자신의 의정보고서 등에 담아 지역구에 홍보하는 풍경이 반복된다. 문제는 과거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가 법안 발의 건수처럼 계량화하기 쉬운 지표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법안 발의 급증, 시민단체 평가 의식한 결과"

시민단체들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96년부터 의원의 의정 활동을 계량화해 순위를 발표했다. 배점은 '출석'(80점)과 '입법 발의'(80점)가 가장 높았고 '질의'(70점), '일문일답'(50점), '자료 요구 건수'(10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의사 진행 방해 시에는 감점(1회당 20점)을 적용했다.


법률소비자연맹은 법안 발의 건수를 최우선 평가 지표로 삼았다. 2011년에는 30점, 2014년부터는 40점으로 배점을 높여 가장 큰 비중을 뒀다. 그 외 '의안 표결 참여'(20점), '상임위 출석'(15점) 등을 합산해 의정활동 순위를 매겼다.

의정활동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된 의원들은 이를 활용해 지역구에서 지지율을 관리했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공천과 당선에 도움을 줬다. 자연스레 의원들은 우수 의원이 되기 위해 보좌진을 독려하며 법안 발의 건수를 늘렸다.


2000년 임기를 시작한 16대 국회에서 2507건이던 의원 발의 법안 건수는 17대 국회에서 7489건으로 3배 가량 급증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16대 국회 이후 급증한 법안 발의는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평가를 의식한 결과"라고 밝혔다.

국회미래연구원이 2021년 국회의원 보좌진 3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1%(115명)는 국회가 중장기 의제를 외면하는 주된 원인으로 단기 입법 성과 중심의 계량 평가, 공천 심사와 언론·시민단체의 정량 평가 압박을 꼽았다.


그래픽은 법률소비자연맹의 의정활동 종합평가 대국민보고서. /그래픽=강지호 기자


"발의 건수만으론 한계"… '질적 평가'로 눈 돌리는 시민단체들

이처럼 법안 발의 건수를 기준으로 한 평가가 법안 남발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시민단체들도 평가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의원 평가는 1996년부터 해왔는데 정성 평가만 하면 주관이 개입될 수 있어서 출석률이나 발언 건수 같은 정량 지표를 일부 넣었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안 발의 건수만으로 의원을 평가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이후 평가 기준은 계속 바뀌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발의했느냐'를 보지 않고 통과 실적이나 정책적 효과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보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의원 평가에 본회의·상임위 출석률 외에도 법안 표결 참여율, 법안 통과율, 발의 법안의 통과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는 의정 활동을 평가할 때 회의 출석률, 법안 발의 건수 등 정량 기록과 개혁 법안 추진, 본회의 표결 태도 등을 종합 반영한다고 밝혔다.

의원들 역시 실적 관리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법안의 완성도와 정책 효과 등 입법의 질을 스스로 점검하는 방향으로 의정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6일(현지시각) 의회 폭동 5주년을 맞은 미국 국회의사당의 전경. /사진=로이터


미국 시민단체, 표결 성향 분석까지

미국에서는 100개가 넘는 NGO(비정부기구)들이 의원의 본회의 표결 내용을 분석해 자신들의 이익이나 가치에 얼마나 부합했는지를 평가·발표하고 있다.

농업, 동물보호, 노동, 여성 인권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은 매년 선정된 쟁점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찬반 표결을 분석한다. 단체의 입장과 100% 일치하게 투표한 의원에게는 100점을, 정반대로 투표한 의원에게는 0점을 부여하는 식이다.

특정 이슈를 넘어 의정 활동 전반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로는 ADA(Americans for Democratic Action) 점수와 ACU(The American Conservative Union) 점수가 꼽힌다.

ADA는 1947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와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이 뉴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창립한 대표적인 진보 단체다. 이들은 시민권, 평등, 경제 정책, 사회보장, 환경 등 광범위한 진보적 의제에서 의원들의 표결 성향을 평가한다.

한편 1964년 창설된 ACU는 경제 성장, 작은 정부, 전통적 가치, 국가 안보 등 상대적으로 보수적 가치를 지향한다. ACU 역시 다양한 법안 표결을 분석해 의원들의 보수 성향 일치도를 점수화하여 매년 발표하고 있다.

차현숙 한국법제연구원 혁신법제본부장은 "시민단체 등의 국회의원 평가 체계가 질 중심으로 바뀌면 의원들의 입법도 따라 바뀔 거라고 본다"며 "당 내부 평가에서도 법안의 '내용'을 함께 들여다보는 등 기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일부 시민단체나 기관에서 '잘 만든 법'에 대해 검토해 시상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