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설립돼 112년간 인도주의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공익사업을 전개해온 대한적십자사의 비리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관리 부실, 직원 기강해이, 방만경영 등 전방위적 비리행위가 ‘2017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기관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엄정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 3분의1이 ‘문제’ 인사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 직원 3분의1이 최근 5년간(2012~2016년) ‘주의’ 이상의 처분을 받았다.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 징계처분을 받은 인원은 116명, 징계 외 경고·주의를 받은 인원이 1234명이다. ‘대한적십자사 감사시행규칙’에 따르면 적십자사 회장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한 직원에게 경고나 주의와 같은 징계 이외의 별도 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고·주의처분도 사실상 ‘문제 직원’에 대한 징계의 일환이라는 의미다. 적십자사의 전체 직원수가 3910명(2016년 말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34.5%(1350명)가 비위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이들의 징계 사유는 일용직 급여 및 식자재 구매예산 부정청구, 리베이트 수취 및 임직원 행동강령 위반, 부실 혈액관리, 음주운전 등 다양했다.
최근 3년(2015.1~2017.7)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국민들로부터 헌혈을 받은 혈장을 방치하거나 사용가능한 혈액을 폐기하는 등 혈액관리 부실로 인한 징계자가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언어폭력 및 폭행 등 품위유지 위반(23명), 소속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태만(11명), 음주운전(8명), 불법리베이트(2명), 횡령(1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징계처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경고나 주의를 통해 (직원들의) 경각심을 고취하고 청렴도를 높이고자 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2017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만경영 문제도 제기됐다.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출받은 ‘적십자병원 적자 및 감면제도 현황’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전국 6개 적십자병원의 누적적자는 658억원, 부채는 249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5년간 병원직원과 배우자, 퇴직자, 유관기관 직원, 단체협약 지정인 및 지인 등에 진찰료 면제 및 입원시 본인부담금을 감면해준 금액이 무려 1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같은 기간 저소득 및 취약계층에 제공한 할인혜택은 1억1300만원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성금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적십자병원이 만성적자에도 직원과 지인에게 특혜성 할인을 남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며 “취약계층보다 더 많이 지원되는 현 감면제도를 하루빨리 폐기하고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성분혈장 원가자료에 따르면 그간 녹십자와 SK플라즈마는 혈액제제의 원료인 성분채혈혈장을 적십자로부터 표준원가 대비 71%, 신선동결혈장은 70.3%, 동결혈장은 65.2% 수준으로 납품받았다.
적십자는 2015년 성분채혈혈장 16만7002원, 신선동결혈장 16만8600원, 동결혈장 17만4846원의 표준원가를 산출하고 혈액제제 협상에 응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수년간 이들 기업에 특혜를 준 셈이다.
◆민간기업만 배불린 ‘방만경영’
결국 적십자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혈장을 팔아 2015년부터 원가 대비 490억90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게 기 의원의 주장이다. 이는 원가 개념이 도입된 이후의 계산으로 원가 도입 이전 판매액을 감안하면 손실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 의원은 “국민들은 헌혈을 통해 모아진 혈장이 제약사에 판매되고 그 약품이 다시 몇배의 가격으로 국민에게 팔리는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국민의 헌혈로 생산한 혈장이 제약사에 원가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팔리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외에 비리행위를 저지른 인사에 대해 징계가 이뤄지는 과정도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위층은 봐주고 일반직원은 엄벌했다는 것.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최근 5년간 15건의 금품관련 비위행위와 징계현황’에 따르면 의사 3명은 각각 2056만원, 1858만원, 269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게 적발됐지만 모두 감봉 조치됐다.
반면 같은 리베이트 문제가 적발된 서울 적십자병원의 방사선사(3급)는 243만원의 뒷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또 수입금을 편취하거나 유용한 5~6급 직원들도 파면이나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정 의원은 “적십자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치료로 생명을 살리자는 의도로 시작된 기구인데 직급이 낮다고 징계 수위를 강하게 적용하는 등 차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책임이 큰 고위직에 더욱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식으로 징계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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