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철의 메커니즘]최고의 자전거 변속장치 '디레일러'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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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언덕을 쉽게 오르거나, 평지를 보다 빨리 달리려면 보통 기어를 변속한다. 흔히 체인변속기가 쓰이는데, 디레일러는 자전거 기술 진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다음은 디레일러 등 변속기 기술 용어를 간략히 설명한다.
① 체인변속기(Chain gear) : 자전거 구동렬의 핵심 기계요소인 체인의 이동경로를 조정하면서 기어비를 바꾸는 장치. 기술 진화의 최신 결과물은 디레일러 변속기(Derailleur gear) 구조이다.
② 허브변속기(Hub gear) : 자전거 구동 바퀴의 중심인 '허브'에 내장되는 변속기로서, 가장 일반적인 구조는 하나 이상의 유성기어장치(Epicyclic gear)를 사용한다. 최근 등장한 허브변속기 중에는 기어를 사용하지 않는 무단변속기(CVT)도 일부 존재한다.
<b>캄파놀로의 모든 것 '툴리오 캄파놀로'</b>
환상적인 메커니즘, 뛰어난 기술제품 뒤엔 당연히 그것을 발명한 '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가 특정 산업영역에서 특허기술을 분석하고 보석 같은 창조물들을 골라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흡사 삼국지 스토리에 빠져드는 듯 수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탈리아 자전거업체 캄파놀로社의 명성이, 단 한 명의 선수이자 엔지니어, 해당 업체의 설립자 '툴리오 캄파놀로(Tullio Campagnolo)'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술혁신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첫 발명품은 1927년 자신이 직접 자전거경주에서 사용하기 위해 자작한 '퀵 릴리스 허브(Quick release hub)'였다.
<b>자전거 세상은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있었다</b>
1900년대 초 자전거 경기에서 퀵 릴리스 허브가 제공하는 이점은 다양했다. 펑크 난 바퀴, 또는 끊어진 체인을 신속하게 통째로 교체함은 물론 일부 변속 메커니즘의 필수 요소로 쓰였다. 당시 각종 유럽 자전거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변속을 시도했다.
① 좌우 양쪽에 각각 다른 크기의 스프라켓(평지용과 업힐용)이 달린 뒷바퀴를 프레임에서 탈거한 후 좌우를 뒤집어 장착함으로써 기어비를 바꾸거나,
② 바퀴 우측에 2∼3개의 스프라켓이 장착되어 있어, 선수는 주행상태를 유지하며 손가락으로 체인을 밀어 그것이 감기는 스프라켓을 바꿈으로써 변속한다.
후자의 경우 스프라켓 크기가 달라질 때마다 이에 알맞은 체인의 길이에도 변화가 뒤따르므로, 텐션(tension; 체인 긴장도)을 조절하는 모종의 수단이 필요했다. 여기에 퀵 릴리스 허브는 역할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캄파놀로의 개인적인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그는 당시 널리 사용되었던 '텐션 조절레버'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선수가 퀵 릴리스 레버를 풀면 뒷바퀴가 체인 텐션 변화에 맞춰 프레임의 앞뒤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체인을 큰 스프라켓에 걸면 뒷바퀴가 전방으로 이동하고, 체인을 작은 스프라켓에 걸면 뒷바퀴가 후방으로 이동함으로써 체인의 긴장상태가 유지되었다.
자전거 경기에 당대 최고의 자전거를 타고 출전한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언덕을 오르기 전 잠깐 멈춰 바퀴를 뒤집어 달거나, 아니면 달리면서 손가락으로 체인을 옮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1896년 헨리 포드(Henry Ford)가 완성한 가솔린 자동차는 자전거에 엔진을 싣는 것으로부터 출발했고, 1903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는 자전거 수리공이었다. 또한 당시 유럽의 생활자전거에는 허브변속기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바퀴를 뒤집거나 손가락으로 체인을 집어 변속했다. 허브변속기는 변속범위가 작고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으며,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날아다닐 정도로 과학기술은 발전했으나 자전거 변속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때문이다.
<b>수준 낮은 체인변속기가 '와해성' 기술로</b>
1928년 심플렉스(Simplex)社의 루시앙 주이(Lucien Juy)는 케이블로 작동하는 '푸시형' 체인변속기(push-rod gear)를 선보인다. 체인의 텐션이 스프링에 의해 자동으로 유지되므로, 이를 조절하는 레버도 필요 없거니와 바퀴가 앞뒤로 이동할 필요도 없어졌다. 작동기계를 디자인함에 있어 극도의 '심플함'은 새로운 메커니즘의 발명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심플렉스의 변속기는 비교적 정확히 작동했으나, 체인과의 마찰이 심했고, 구조적으로 장치의 부피가 변속범위에 비례하는 특성이 있어, 변속범위를 늘릴수록 외부의 충격에 취약해지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이에 고집스럽게 체인변속기에만 매달렸던 툴리오 캄파놀로는 퀵 릴리스 허브의 발명 이후, 20년 뒤인 1949년 자전거처럼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진정한 '디레일러(derailleur)'를 선보인다. 디레일러의 작동 모습 또한 자전거와 매우 닮았다. 위쪽 바퀴인 가이드 롤러(guide roller)는 자전거 앞바퀴가 방향을 선택하듯 체인을 걸어 돌릴 스프라켓을 옮겨 다니고, 아래쪽 바퀴인 텐션 롤러(tension roller)는 자전거 뒷바퀴가 지면을 밀어 구동력을 얻듯 체인을 밀어 텐션을 유지한다.
그리고 디레일러 구조의 핵심은 평행사변형 링크에 있다. 평행사변형 링크장치(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사각형)의 구성이 제공하는 가장 큰 효과는 변속과정 중 롤러의 방향(아래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고, 아울러 변속범위를 넓히기 위해 스프라켓 개수를 늘리더라도 디레일러의 부피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수의 스프라켓도 평행사변형 링크의 길이를 늘이면 대응 가능한 구조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전거 '변속기'하면 디레일러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수많은 허브변속기 개발업체들을 단번에 몰락시킨 역사적인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었기 때문이다. 더 넓은 변속범위를 제공해 산과 들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고,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여 제조가 용이하며 고장률이 낮음은 물론 교체작업도 별 부담이 없는 등, 캄파놀로의 디레일러 발명으로 지저분하고 번거롭기만 하던 체인변속기 기술은 자전거 변속기 시장의 '대세'가 되어 지금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캄파놀로의 디레일러는 2% 부족했다. 이 부족한 부분을 해결한 일본기업은 '아시아 짝퉁업체'의 오명을 씻고, 일본 자전거 산업에 '기술혁신' 이미지를 덧씌우는 공로를 세우게 된다. 그 기업의 뛰어난 '단 한 사람'이 떠올린 메커니즘은 다음 편에 소개하기로 한다.
<b>대단한 외국 메커니즘, 외국 발명가 이야기가 식상하다면</b>
“기술로 이 답답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방법이라곤 오직 기술개발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물론 우리 주변에도 있다. (주)만도에서 차세대 운송수단 신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송준규 부장의 경우는, 언젠가 결코 길지 않았던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주사처럼 되풀이 하고 있었다.
※ 본 연재물은 생산기술연구원 자전거종합연구센터(윤덕재 센터장)가 진행 중인 '자전거 특허기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신병철 객원기자 : 기술 분석 전문가, (주)다이나필 대표
① 체인변속기(Chain gear) : 자전거 구동렬의 핵심 기계요소인 체인의 이동경로를 조정하면서 기어비를 바꾸는 장치. 기술 진화의 최신 결과물은 디레일러 변속기(Derailleur gear) 구조이다.
② 허브변속기(Hub gear) : 자전거 구동 바퀴의 중심인 '허브'에 내장되는 변속기로서, 가장 일반적인 구조는 하나 이상의 유성기어장치(Epicyclic gear)를 사용한다. 최근 등장한 허브변속기 중에는 기어를 사용하지 않는 무단변속기(CVT)도 일부 존재한다.
<b>캄파놀로의 모든 것 '툴리오 캄파놀로'</b>
환상적인 메커니즘, 뛰어난 기술제품 뒤엔 당연히 그것을 발명한 '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가 특정 산업영역에서 특허기술을 분석하고 보석 같은 창조물들을 골라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흡사 삼국지 스토리에 빠져드는 듯 수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탈리아 자전거업체 캄파놀로社의 명성이, 단 한 명의 선수이자 엔지니어, 해당 업체의 설립자 '툴리오 캄파놀로(Tullio Campagnolo)'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술혁신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첫 발명품은 1927년 자신이 직접 자전거경주에서 사용하기 위해 자작한 '퀵 릴리스 허브(Quick release hub)'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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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툴리오 캄파놀로(1901∼1983), 캄파놀로 홈페이지 자료 |
<b>자전거 세상은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있었다</b>
1900년대 초 자전거 경기에서 퀵 릴리스 허브가 제공하는 이점은 다양했다. 펑크 난 바퀴, 또는 끊어진 체인을 신속하게 통째로 교체함은 물론 일부 변속 메커니즘의 필수 요소로 쓰였다. 당시 각종 유럽 자전거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변속을 시도했다.
① 좌우 양쪽에 각각 다른 크기의 스프라켓(평지용과 업힐용)이 달린 뒷바퀴를 프레임에서 탈거한 후 좌우를 뒤집어 장착함으로써 기어비를 바꾸거나,
② 바퀴 우측에 2∼3개의 스프라켓이 장착되어 있어, 선수는 주행상태를 유지하며 손가락으로 체인을 밀어 그것이 감기는 스프라켓을 바꿈으로써 변속한다.
후자의 경우 스프라켓 크기가 달라질 때마다 이에 알맞은 체인의 길이에도 변화가 뒤따르므로, 텐션(tension; 체인 긴장도)을 조절하는 모종의 수단이 필요했다. 여기에 퀵 릴리스 허브는 역할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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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 초 '텐션 조절레버', 레버 조작으로 체인 긴장을 이완시키고 손가락으로 체인을 옮겼다 |
캄파놀로의 개인적인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그는 당시 널리 사용되었던 '텐션 조절레버'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선수가 퀵 릴리스 레버를 풀면 뒷바퀴가 체인 텐션 변화에 맞춰 프레임의 앞뒤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떠올린다. 체인을 큰 스프라켓에 걸면 뒷바퀴가 전방으로 이동하고, 체인을 작은 스프라켓에 걸면 뒷바퀴가 후방으로 이동함으로써 체인의 긴장상태가 유지되었다.
자전거 경기에 당대 최고의 자전거를 타고 출전한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언덕을 오르기 전 잠깐 멈춰 바퀴를 뒤집어 달거나, 아니면 달리면서 손가락으로 체인을 옮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1896년 헨리 포드(Henry Ford)가 완성한 가솔린 자동차는 자전거에 엔진을 싣는 것으로부터 출발했고, 1903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는 자전거 수리공이었다. 또한 당시 유럽의 생활자전거에는 허브변속기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바퀴를 뒤집거나 손가락으로 체인을 집어 변속했다. 허브변속기는 변속범위가 작고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으며,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날아다닐 정도로 과학기술은 발전했으나 자전거 변속 문제를 해결할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때문이다.
<b>수준 낮은 체인변속기가 '와해성' 기술로</b>
1928년 심플렉스(Simplex)社의 루시앙 주이(Lucien Juy)는 케이블로 작동하는 '푸시형' 체인변속기(push-rod gear)를 선보인다. 체인의 텐션이 스프링에 의해 자동으로 유지되므로, 이를 조절하는 레버도 필요 없거니와 바퀴가 앞뒤로 이동할 필요도 없어졌다. 작동기계를 디자인함에 있어 극도의 '심플함'은 새로운 메커니즘의 발명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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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앙 주이가 발명한 '푸시형' 체인변속기. 1903년에 시작된 자전거 경기의 대명사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since 1903)'에서는 1919년부터 1937년까지 변속기의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운영위원의 시각에서 일종의 트릭이라 여긴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심플렉스의 변속기는 비교적 정확히 작동했으나, 체인과의 마찰이 심했고, 구조적으로 장치의 부피가 변속범위에 비례하는 특성이 있어, 변속범위를 늘릴수록 외부의 충격에 취약해지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이에 고집스럽게 체인변속기에만 매달렸던 툴리오 캄파놀로는 퀵 릴리스 허브의 발명 이후, 20년 뒤인 1949년 자전거처럼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진정한 '디레일러(derailleur)'를 선보인다. 디레일러의 작동 모습 또한 자전거와 매우 닮았다. 위쪽 바퀴인 가이드 롤러(guide roller)는 자전거 앞바퀴가 방향을 선택하듯 체인을 걸어 돌릴 스프라켓을 옮겨 다니고, 아래쪽 바퀴인 텐션 롤러(tension roller)는 자전거 뒷바퀴가 지면을 밀어 구동력을 얻듯 체인을 밀어 텐션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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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현대적 체인변속기, Gran Sport(1950년) |
그리고 디레일러 구조의 핵심은 평행사변형 링크에 있다. 평행사변형 링크장치(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사각형)의 구성이 제공하는 가장 큰 효과는 변속과정 중 롤러의 방향(아래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고, 아울러 변속범위를 넓히기 위해 스프라켓 개수를 늘리더라도 디레일러의 부피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수의 스프라켓도 평행사변형 링크의 길이를 늘이면 대응 가능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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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캄파놀로의 디레일러 특허 도면 |
오늘날 우리가 자전거 '변속기'하면 디레일러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수많은 허브변속기 개발업체들을 단번에 몰락시킨 역사적인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었기 때문이다. 더 넓은 변속범위를 제공해 산과 들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고,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여 제조가 용이하며 고장률이 낮음은 물론 교체작업도 별 부담이 없는 등, 캄파놀로의 디레일러 발명으로 지저분하고 번거롭기만 하던 체인변속기 기술은 자전거 변속기 시장의 '대세'가 되어 지금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캄파놀로의 디레일러는 2% 부족했다. 이 부족한 부분을 해결한 일본기업은 '아시아 짝퉁업체'의 오명을 씻고, 일본 자전거 산업에 '기술혁신' 이미지를 덧씌우는 공로를 세우게 된다. 그 기업의 뛰어난 '단 한 사람'이 떠올린 메커니즘은 다음 편에 소개하기로 한다.
<b>대단한 외국 메커니즘, 외국 발명가 이야기가 식상하다면</b>
“기술로 이 답답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방법이라곤 오직 기술개발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물론 우리 주변에도 있다. (주)만도에서 차세대 운송수단 신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송준규 부장의 경우는, 언젠가 결코 길지 않았던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주사처럼 되풀이 하고 있었다.
※ 본 연재물은 생산기술연구원 자전거종합연구센터(윤덕재 센터장)가 진행 중인 '자전거 특허기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신병철 객원기자 : 기술 분석 전문가, (주)다이나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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