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타개·사업 확장 '두토끼 잡기'… 무분별 다각화 삼가야

부동산·건설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 요즘, 도산하거나 자산매각에 나서는 업체가 줄을 잇는 가운데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는 건설사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른바 '투잡 전선'에 국내 건설 선두기업들마저 속속 뛰어드는 모양새다.


이는 부동산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서 주택이나 토목공사 등 건설업과 전혀 상관없는 이색 업종으로의 사업 다각화를 모색함으로써 불황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추진하는 사업 다각화 생존전략이 과연 불황의 파고를 이겨낼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건강식품 개발하고 화장품 팔고

시공능력 17위의 한라건설은 1980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비건설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새로 발을 디딘 곳은 먹는 샘물시장. 제품의 이름은 회사명에서 이니셜을 따 'H워터'로 지었다.


한라건설에 따르면 해당 신규사업은 지난 3월 말 주주총회에서 사업 추진 승인을 얻었다. 시장 경쟁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내린 결정이다. 제품 생산시기를 정하지는 못했지만 한라건설은 현재 강원도 평창군청으로부터 생산허가를 받아놓고 제조공장을 알아보는 등 사업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한라건설 관계자는 "생수사업 아이디어는 사내 사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며 "앞으로도 전사적으로 힘을 모아 건설업 외 사업 다각화를 위해 힘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공능력 25위의 한신공영도 '먹거리 사업' 확장으로 계열사를 늘렸다. 2010년 전북 장수군과 손을 잡고 식품 개발·가공 전문업체인 '장수건강'을 설립했다. 올해부터 건강식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 그룹 내 주요 수익창출원으로 성장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계룡건설은 패션 아울렛 매장 운영을, 신안그룹은 화장품 개발을, 이테크건설은 바이오와 제약분야에 진출하는 등 중견 건설사들이 불황 타개와 사업 확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각오로 비건설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생존 위한 필수 생존전략"

대형건설사들은 일찍이 사업 다각화를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시공능력 1위 현대건설은 인트라넷 등 보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판매하는 '현대씨엔아이'라는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사내정보관리시스템 개발·운영팀의 덩치가 커지자 5년 전부터 별도 법인으로 만들어 운영 중이다. 지난해 71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GS건설과 대우건설은 각각 '상락푸드'와 '푸드림'이라는 건설현장 식당을 운영 중이다. 건설사가 직접 현장 식당 '함바'를 운영함으로써 내부 수익 개선과 함께 행정관리의 효율성도 갖추게 됐다. 설립 10주년을 넘긴 상락푸드의 경우 75개 건설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지난 한해에만 257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SK건설은 자회사를 통한 비건설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 D&D는 강남구 논현동 가구거리에서 수입가구 매장을 운영 중이다. SK건설 계열사였다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에 인수된 SK임업 역시 자작나무 수액으로 만든 기능성 건강음료를 판매해왔다.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지에 따라 세워진 회사인 만큼 그룹 지주회사로 밑으로 두는 편이 그룹 이미지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지난해 6월 인수절차를 마쳤다.

이의섭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경제 논리상 기업의 사업 다각화는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건설사들의 비건설사업 확장 흐름도 그러한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투잡 움직임을 당장의 불황 타개를 위한 탈출구라기 보단 기업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섣불리 도전했다 '쪽박' 찰 수도

건설사들의 비건설사업 확장은 앞서 2007∼2008년에도 붐을 이룬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의 사업 다각화는 말 그대로 '잘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본업인 건설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업장을 인수하거나 자회사·계열사를 늘리는 식으로 회사의 부피를 키운 것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대체로 참혹하다. 현대산업개발이 악기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2006년 인수한 영창뮤직은 현재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영창뮤직은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운전자금 45억원을 차입했다. 최근 몇년 새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이어올 정도로 재무구조가 나빠진 것이 차입 배경으로 분석된다.

2008년 강남구 청담동에서 6층짜리 고급 와인바를 운영했던 신창건설은 3년 전 가게 문을 닫았다. 당시 유명 연예인들과 와인 애호가들의 발길이 잦아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본업인 건설업이 흔들리면서 사업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우미건설은 10년 전 한우 미식가로 알려진 창업주 이광래 회장의 뜻에 따라 '우미관'이라는 한우전문 고깃집을 열었지만 마찬가지로 3년 전 폐업했다. 현재는 수입차 딜러업체에 건물을 임대한 상태다.

모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은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며 "건설사들의 비건설사업 진출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사안이 됐다. 상당수 건설사들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시장조사 없이 섣불리 도전했다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며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경기 흐름을 잘 타는 건설사의 경우에는 특히 계열사 확장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