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근로자 지위 반대하는 이유는
구조조정·소득세 상향 우려 설계사도…회사는 4대보험 등 부담 걱정
심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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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6 |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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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의원 (사진=뉴스1 송원영 기자) |
# 국내 중소형생명보험사에서 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최근 평소 알고 지내던 대형 GA(대리점) 설계사 B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B씨는 설계사도 일반 근로자로서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A씨는 그럴 경우 돌아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며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펼친 것. 이 두명은 현재 발의된 보험설계사 관련 법안을 두고 몇시간 동안 '갑론을박'을 벌였다.
보험설계사의 법적지위 향상 문제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2013년도 국정감사'에서 설계사에 대한 불공정행위가 논란이 되면서 이들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국감에서는 특히 보험사들의 '설계사 수수료 부당환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보험사의 불공정행위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설계사들을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사업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최대 수혜자인 설계사 사이에서는 '찬성'과 '시기상조'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생보사, 부당하게 설계사 수수료 환수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주 의원은 지난 10월31일 보험사들이 불공정 계약을 통해 설계사의 수수료를 부당하게 환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국감자료를 분석한 결과 11개 생명보험사는 보험설계사의 귀책사유가 없는 보험해지 건에 대해서도 설계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에 따르면 보험사는 설계사와 맺는 '업무위촉계약서'를 통해 '민원해지되는 계약에 대해서는 설계사에게 지급된 수수료를 100% 환수한다'고 정했다. 보험사들은 이를 빌미로 설계사가 '불완전 판매' 요소 없이 상품을 제대로 판매했음에도 설계사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수수료를 환수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주 의원은 "불공정 약관으로 설계사가 이미 지급받은 수수료를 환수하는 것은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초래한다"며 "설계사들은 우리사회 대표적인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위한 제도적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불합리한 내용을 시정하기 위해 지난 10월16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보험사가 설계사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했을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파장 몰고올 보험설계사 근로자 인정
보험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법안은 또 있다. 바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보험설계사와 함께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을 특수형태 근로사업자로 인정하자는 것이 주내용이다.
지금까지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다. 근로사업자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고용계약서를 맺고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위촉·위임 등의 계약을 통해 독립적인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목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근로사업자의 범위에 '독립사업자의 형태로 사업주의 사업에 필요한 노무 또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하도록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설계사는 근로사업자가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만약 보험설계사의 지위가 근로사업자로 바뀌면 이들을 고용한 보험사는 4대 보험부터 시작해 퇴직금, 각종 복지후생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 경우 보험사가 지불해야 되는 추가비용은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로자로 지위가 향상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려면 그에 따르는 비용 역시 어마어마하게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현재 생보사에 등록된 전속설계사는 15만명에 달한다"며 "4대 보험 보장만 추가하더라도 비용은 눈덩이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사간 엇갈린 반응…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근로자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법안의 실제 수혜자인 설계사들은 '찬반양론'으로 갈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설계사들의 근로사업자 전환에 대한 엇갈린 반응은 향후에 불어 닥칠 수 있는 인력 구조조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근로사업자 전환을 반대하는 측은 보험사가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할 경우 실적이 부진한 설계사에 대해 구조조정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 보험설계사는 "일부 설계사 사이에서는 정리해고 문제를 걱정해 근로자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액소득을 올리는 설계사들은 근로사업자 전환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세금문제'에 민감한 상황이다. 현재 보험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로 평균 4%대의 소득세를 부담한다. 그러나 이들이 근로자로 전환되면 약 22%의 소득세가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근로소득자 전환으로 5배가량 많은 세금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이 많지 않은 설계사들은 근로사업자로의 전환이 반가울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고소득 설계사 사이에서는 세금문제로 인해 근로사업자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기류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GA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설계사 역시 "세금문제 등을 고려하면 근로사업자로의 전환이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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