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응용연구보다 개발 치중…외국기관과 공동연구 확대 시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R&D 집약도(GDP 대비 R&D 지출)는 이스라엘의 뒤를 이어 OECD 소속 국가 중 두번째로 높다. 아직 규모 면에서는 미국의 6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경제규모 대비 R&D 투자는 세계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인의 한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 OECD에서 집계하는 모든 통계는 각 국가에서 보내준 자료에 의존한다. 국가별 통계는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 연구주체들이 제출한 자료를 취합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통계의 신뢰성은 개별 연구주체들이 얼마나 솔직하고 정확한 자료를 제출했는가에 달려 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 비영리 주체들은 연구비에 대한 회계분류가 비교적 명확하다. 연구와 무관한 출장 등 부풀려진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국가 전체의 R&D 통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R&D 투자실적, 연구결과로 말하라

하지만 기업의 경우 R&D 규모가 크고 회계방식도 복잡해 통계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기업들의 회계 자율성이 커졌고 세부항목에 대해서는 명시할 의무가 없어졌으며 임의로 구성항목을 변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순수한 R&D 지출과 일반 경상비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와 R&D 투자와의 경계도 모호하다. 즉, 기업들이 목적에 따라 R&D 지출액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정부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R&D 재정은 예산과 기금으로 구분되는데 기금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덜 엄격해 필요에 따라 R&D 집행규모를 과대 포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만약 기업이나 정부의 R&D 지출규모에 허구가 있다면 OECD 순위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외부에 공표되는 R&D 규모나 집약도는 실제 연구자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됐고 어떤 결과물들을 내놓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기업 역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치가 아니라 우수한 산출물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종종 "우리 회사에 D(development)는 있지만 R(research)은 없다"는 말을 듣는다. 개발은 있지만 연구가 없다는 의미다. 기업의 경우 국내 전체 R&D 비용의 76.5%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품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별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기초연구 비중은 18.1%다. 응용연구까지 포함한 연구분야 비중은 38.3%다. 칠레,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등의 국가들은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비중이 70%를 넘는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R&D 대전’에서 한 여성이 가상의류 서비스인 ‘리얼핏’을 시연하고 있다.(사진=뉴스1)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R&D 피하라"

국내 연구자들은 협업체계와 글로벌 네트워크에 있어 매우 취약하다. 얼마 전 한 외국인사는 신문기고를 통해 한국이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를 "외국 기관과의 공동연구 혹은 공동 집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이 부분에 공감한다. 해당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연구그룹 혹은 인물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공저자로 그들의 이름이 오른다면 얻는 것이 많다. 비단 노벨상뿐 아니라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최고 권위의 저널에 논문을 게재할 때도 해당된다.
 
기업들의 R&D 역시 공동연구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기업들이 외부와 공동으로 R&D를 진행하는 비중은 14.2%다. 이 수치는 덴마크 41%, 스웨덴 33%, 벨기에 33% 등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다.

또한 공동연구 파트너의 대부분이 국내기업들이다. 외국기업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비중은 28.5%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섹터의 R&D 지출 중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비중은 0.13%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 칠레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유럽연합(EU) 28개국 평균은 10.3%다.

지나치게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R&D 활동으로 인해 자칫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고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기업, 대학, 국책연구소 등 연구 주체들은 우리보다 앞선 기술과 경험을 지닌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다양하고 효율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더욱이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결과물을 얻기 원한다면 네트워크 파트너를 동일 분야에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으로 확장해 융합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의 R&D 전략 필요

태양광, 바이오, 2차전지 등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저명인사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면 많은 기업들이 충분한 검토와 전략도 없이 해당 업종에 뛰어든다. 기업의 R&D 주제도 그러한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R&D 전략은 이러한 기업의 성향과는 달라야 한다.

R&D와 관련한 대학이나 연구소의 주된 재원은 여전히 정부의 자금이다. 연구기관들은 정부의 R&D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항상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정부의 평가기준이 특허나 논문의 양, 기술이전 등 상용화 실적에 치우친다면 취약한 기초연구 분야는 더욱 외면 받게 될 것이다. 정부의 R&D 정책이 단기간의 가시적인 실적이나 기술료 회수 등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가장 큰 이유다.

정부가 내놓는 R&D정책의 우선순위와 예산배정이 정권의 성향이나 유행에 따라 수시로 변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한국은 결코 R&D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연구해야 한다.

긴 안목과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연구주제를 계획하고 효율적인 배분이 이뤄지도록 조율해야 한다. 또한 기초연구 강화, 연구결과물의 질적 향상,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국내 연구 주체들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장의 의견을 적극 청취, 수용해 관리자가 아닌 멘토로서 R&D 강국의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가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