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말이 넓은 들판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청마의 해’ 갑오년이 밝았다. 진취적인 기상으로 행운을 불러 온다는 푸른 말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갑오년을 맞이한 재계에서도 진취적인 모습이 확연하다. 오너 3세 경영에 시동을 걸면서 각 기업들의 황태자들이 하나둘씩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다. 연말인사를 통해 승진한 오너 3세들의 2014년 경영행보를 진단했다.

◆삼성·한진, 오너 3세 자리 잡나

삼성은 오너 3세들을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앉히고 사실상 삼각체제를 구축했다. 지난해 12월2일 이건희 회장(72)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41)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 이로써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6)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44), 이서현 사장 3남매는 모두 사장 이상의 직급에 올라섰다.

3세 경영 시동 거는 재벌가

이서현 사장의 승진은 삼성의 지주사 격인 에버랜드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관측된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1일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넘겨받아 다음 날 이 사장의 승진을 공식화했다. 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을 겸하고 있던 이부진 사장과 함께 두 자매는 한 곳에 있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에버랜드에 직책을 갖고 있지 않지만 25.1%의 지분을 쥐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로써 삼성가 오너 3세는 모두 에버랜드에 대한 영향력을 나눠 갖게 됐다. 향후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계열을,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와 건설계열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광고계열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도 오너 3세의 초고속 승진으로 후계 경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진은 지난해 12월24일 인사에서 조양호 회장(65)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38)에게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했다. 2011년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을 맡은 그는 지난해 승진에 이어 7월부터 화물사업본부장을 겸임해왔다. 여기에 지주사까지 맡게 되면서 경영활동 폭이 넓어졌다. 조 부사장은 2003년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한 뒤 이듬해 대한항공으로 옮겨 2006년 상무보, 2009년 전무로 승진했다.

3세 경영 시동 거는 재벌가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31)도 연말인사에서 1년 만에 다시 전무로 초고속 승진하며 3세 경영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는 2005년 LG애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07년 3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해 2010년 상무보로 승진했다.

앞서 지난해 조원태 사장과 함께 부사장으로 승진한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40)은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부로 입사한 뒤 2005년 상무보, 2009년 전무로 승진했다. 재계는 이들 3남매의 초고속 승진이 후계 경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대상·LS, 후계 경쟁 시작되나

대상그룹도 이번 연말인사를 통해 3세 경영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상은 지난해 12월26일 임창욱 명예회장(65)의 차녀인 임상민 대상㈜ 부장(34)을 기획관리본부 부본부장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임 상무는 지주사인 대상홀딩스 지분 38.4%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20.4%를 보유하고 있는 언니 임세령 대상HS 대표 겸 대상㈜ 상무(38)보다 지분이 많다. 임 상무는 2012년 10월 대상그룹 기획관리본부에 합류해 경영 전반에 관한 업무들을 익혀왔다. 또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프로젝트 검토 등 대상그룹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며 경영수업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계는 2016년 대상그룹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후계 승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임 회장은 1956년 그룹 설립 이후 30년 만에 아버지인 임대홍 창업회장(94)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다시 30년 만에 오너 3세로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LS그룹도 3세 경영에 시동을 걸며 후계 경쟁구도를 만드는 모양새다. LS그룹은 구태회 명예회장(91)의 차남인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외아들 구본규 LS산전 부장(35)을 지난해 12월12일 이사로 승진시키며 임원 대열에 합류시켰다. 구 이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 2007년 LS전선에 입사한 뒤 2011년에 LS산전으로 옮겨 이듬해 부장이 됐다. 재계는 올해 원전비리 연루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발표된 구 이사의 승진은 경영 승계작업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미 임원으로 승진한 구자엽 회장의 동생 구자명 니꼬동제련 회장(62)의 아들인 구본혁(37) 상무에 이어 구 이사까지 임원이 되면서 두 사람의 후계 경쟁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양상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오너 3세들은 그룹 경영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오너 부재 기업, 3세 경영 ‘꿈틀’

오너 부재로 인해 위기 상황을 맞이한 일부 기업들은 3세 경영의 기반 마련에 천천히 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세아그룹은 지난해 12월22일 고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남 이태성 세아홀딩스 상무(36)를 세아베스틸 기획본부장으로 겸직 발령했다. 이로써 이 상무는 세아홀딩스를 통한 그룹 경영과 함께 핵심사업까지 맡게 됐다. 세아홀딩스에서 전략기획을 맡았던 그가 세아그룹 근간인 철강부문 경영에 참여한 것은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현 회장(54)의 공백으로 위기를 맞이한 CJ그룹도 오너 3세 수업을 시작하는 양상이다. 이 회장의 장남인 선호씨(24)는 최근 CJ제일제당의 한 영업지점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장녀인 경후씨(29)도 최근 CJ에듀케이션즈에서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 언더웨어침구팀 상품기획담당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화그룹도 올해는 3세 경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은 현재 정기인사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지만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62)의 장남인 김동관(31)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차장)의 승진 가능성을 보고 있다. 김 실장은 그동안 김 회장의 재판 등으로 승진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김 실장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오너 1·2세가 이룬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3세들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며 “아직 형제간의 승계 구도가 확실하지 않은 기업도 있는데 이 경우는 3세 경쟁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