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방 출장에서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어렵게 짓는 이유를 아냐고 묻길래 "시어머니 못 찾아 오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답했다. 국민 유머니까 이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데 요즘은 한글로 짧고 쉽게 짓는 게 유행이란다. 왜냐고 하니,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지으니깐 아들 보고 싶은 시어머니가 시누이 앞세워서 오더란다. 시어머니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 오시려면 차라리 혼자 오시라, 뭐 이런 이야기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시어머니가 꼭 ‘늙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늙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늙지 않는 사람 또한 없다. 그런데 늙음이란 시어머니가 데리고 오는 '시누이들'이 있다. 바로 ‘고독’, ‘빈곤’, ‘질병’이라는 시누이들이다. 하나 같이 얄미운 이름들이다.

어쩌면 ‘은퇴준비’도 어차피 올 ‘늙음’이라면 ‘얄미운 시누이들’ 최대한 오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돈 많다고 친구 없으면 무슨 소용이며 친구 많다고 제 몸 아프면 대신 아파줄 친구도 없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왔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준비하는 이는 드물다. 현재 프레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르신들이 80세 전후로 돌아가시니 나도 그 정도 살고 말겠거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00세까지 '지지않는 게임'을…

◆직업 전환하지 못해 발생하는 ‘고독’

은퇴 후 가장 심각한 위험은 ‘고독해 지는 것’이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고독은 ‘인식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 놀겠다는 얘기다. 이와 반대로 100세까지 살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할 일을 고민한다. 생활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질문을 바꾸니 대답도 바뀌는 것이다.

얼마 전 고령화 가족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처럼 정말 고령화 사회가 되면 어떻게 될까. 부모와 자녀 모두 힘들어질 것이다. 때문에 '장수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단어는 ‘자립’이다.

부모도 자식에게서 자립해야 하고, 자식도 부모에게서 자립해야 한다. 남편은 두번째 직업을 가져야 하고, 부인은 전업주부로부터 퇴직해야 한다. 자립을 위해서는 30~50대에 두번째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자립을 통한 재정적 안정과 자기정체성 확보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것은 ‘직업’이다. 여행을 하지 말고 여행사를 운영하라. 춤을 추지 말고, 춤을 가르쳐라. 길어진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직업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전환하지 못하는 것이다.

◆ '지지 않는 게임'으로 빈곤 탈출

최근 은퇴 이후 재정문제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수익성 자산’이다. 수익성 자산의 대명사는 연금이다. 연금은 특히 월급쟁이들에게 중요하다. 월급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일수록,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퇴직 이후 월급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연금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연금제도에 대한 오해가 생길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금저축에 대한 세제혜택이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줄어들었다는 것이지, 혜택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돌려받는 구조였는데, 앞으로는 똑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근로소득자의 경우 연소득 3000만원 수준)인 경우에는 세제혜택이 오히려 2배로 늘었다. 고소득자 입장에서는 세제혜택이 줄어들어 서운하겠지만,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불안하고 금리는 낮은 상황에서 매년 낸 돈의 12%를 돌려준다니 이만한 상품이 또 있겠는가.

일부에서는 세액공제를 해주는 대신 연금소득세를 부담해야 하니 연금저축이 불리하다는 주장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금저축이 유리하다. 현재가치 기준으로 비교해 본 결과 누구나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국가에서 474만원씩 지원해 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니 연간 400만원까지는 일단 납입하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다면 다른 연금에 가입해도 된다.

또 하나, 종신연금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연금상품의 지급유형에는 20년, 30년 등 기간을 정해 연금을 지급하는 확정기간형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지급하는 종신지급 형태도 있다. 오래 사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종신연금형이 제일 좋을 듯 한데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평생 지급하는 대신 연금액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종신연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이 대표적인 종신연금이다) 굳이 개인연금까지 종신연금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은퇴를 위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게임을 해야 한다. 수익을 추구하되 위험관리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어떤 자산관리든 소득의 원천이 있어야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업만 잘 된다면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둘은 서로 만나기 어렵다. 주가는 꼭 내가 돈 쓸 일이 없을 때에만 오른다. 사업이 어려워져 찾으려고 보면 반토막이다. 당연하다. 주가와 사업경기는 방향성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지 않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의 사업과 직장을 지키는 일이다.

◆ 100세 시대로 가는 보험 리모델링 원칙

유지할 건 유지하고, 깰 건 깨라. 보험 리모델링을 위한 원칙이다. 예전 보험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종신연금의 경우 가입시점의 경험생명표에 따라 연금지급액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오래된 연금이 더 유리하다. 경험생명표는 매 3년마다 변경 적용되는데 평균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같은 금액이라면 갈수록 연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의료실비보험의 경우에도 2009년에 큰 변경이 있었다. 그동안은 자기부담금이 없었는데 이후 가입자는 1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반면 교체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100세 시대에 대한 대응이다. 의료실비를 예로 들자면 100%를 보장해주는 것은 좋은데 보장기간이 80세까지로 되어있다면 90%만 보장하더라도 100세까지 보장해주는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다. 보장내역도 사망을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했다면 고액질병이나 노후질병에 대비하는 보험으로 조정해 주는 것이 좋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특히 질병장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251만명 중 후천적 장애인이 91%다. 태어나면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중 55%는 사고가 아닌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다. 이런 비율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질병장애의 68%가 50대 이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금 건강하다고, 평생 건강할 거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질병보험은 건강할 때 가입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선제적인 자산관리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