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골목에 대구의 역사가 있다. 해방 후 최고 부자들이 살았던 진골목,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약재 시장, 민족정신의 스승이 된 문인과 인사…. 대구 근대 골목의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지금의 나, 과거의 무엇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이상화고택
이상화고택


◆역사 긴~골목, 진골목

이래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진골목의 뜻은 ‘긴 골목’이다. 요즘처럼 뭐든 대형화되고 있는 마당에 골목이 길어봤자 얼마나 길겠나. 겨우 100m 남짓, 그렇지만 그 역사만큼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100년 전 부자가 많이 살았던 곳, 아직도 근대의 얼굴로 현대의 여행자들을 다정히 맞이하는 골목, 이곳이 진골목이다. 근대 초기 달성 서씨 부자들이 사는 동네였다. 이곳에서 당시 최고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형제들이 살았다. 뿐만 아니라 코오롱, 금복주 등의 창업자와 정치인, 문인 등 당시 대구에서 이름 깨나 날리던 사람들의 동네다.

이 골목은 복잡하다. 붉은 벽돌, 대구 읍성의 돌, 시멘트, 콘크리트, 나무 대문, 철문, 기와지붕, 슬레이트지붕, 콘크리트 지붕…. 어떤 것은 한옥을 닮았고, 어떤 것은 양옥집이고, 어떤 것은 그냥 다세대 주택이다. 가볍게 지나치기 쉽지만 과거의 영화를 자랑하는 건물도 있다. ‘정소아과의원’ 이라는 간판이 붙은 2층짜리 집은 원래 서병기의 저택이었다. 후에 병원이 됐고 지금은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 건물’로 진골목의 상징이 됐다.
서병국 저택의 뒷담
서병국 저택의 뒷담
미도다방도 있다. 1982년 문을 연 이후 정치인, 유림, 문인들의 명소가 됐다. 이곳의 단골이었던 전상열 시인은 타계 직전에 ‘미도다방’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다방은 지금도 ‘영업중’이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느린 걸음으로 찾아와 ‘정여사’가 끓여주는 차 한잔을 대접받는 곳이다. 설탕을 찍어 먹는 생강, 동그랗게 말린 생강 과자, 계란 넣은 쌍화차 맛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의 과거와 추억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여행자는 호기심에 한번 들렀다 가지만 이곳의 어르신들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건강히 사랑방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초’와 ‘오래된 것’들의 약령시

약령시란 한약재 전문시장을 말한다. 대구 약령시는 357년 전 조선 효종 때 한약재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임금의 명으로 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약령시인 만큼 대를 이어 한약방을 운영하는 집들이 많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약제경매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봄과 가을에 크게 열리는 ‘계절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상설시장이 됐고, 대신 가을마다 ‘한방문화축제’가 열린다.
약령시
약령시
'약령시한의약박물관' 건너편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1893년 이 자리에 ‘남성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경상북도 및 대구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가 됐다. 우뚝 선 예배당 벽은 푸른 담쟁이로 덮여 있어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이다. 다만 담쟁이가 오래된 교회 건물을 약하게 하여 ‘담쟁이를 쳐 낼 것이고, 내년이면 이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소문을 해마다 듣는다. 때문에 여행자는 조바심으로 사진을 남기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화교협회도 근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입구에는 시황제, 공자, 당태종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여기가 어딘지를 분명히 한다. 건물은 붉은 벽돌과 하얀색 화감암으로 짱짱한 균형미를 이루고 80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 깨끗해 화교협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원래는 대구 갑부였던 서병국이 1925년에 지은 저택의 일부였다고 하니 당시의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이 골목에서 만나야 할 사람은 이상화와 서상돈이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민족시인이다. 이상화 고택은 1939년부터 선생이 사망한 해인 1943년까지 말년을 보낸 집이다. 선생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대구학생봉기를 주도했다. 1927년에는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돼 구금되기도 하고, 1937년 4개월 동안 일본관헌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니 일제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 순사는 이상화의 시가 조선인에게 미칠 영향을 염려해 원고를 모두 압수해 갔고, 때문에 시집을 한권도 발간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고택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역천>의 시비가 있다.
서상돈고택
서상돈고택
이상화 고택 앞에는 서상돈 고택이 있다. 서상돈은 조선 말기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사람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키울 때쯤, 조선에 강제로 차관을 받게 했고 이 빚이 불어나 1907년에는 1300만원이 된다. 물론 그 당시 조선은 그 돈을 갚을 능력이 되지 못했고, 일본에게는 침략의 좋은 구실이 됐다. 서상돈은 1907년 1월29일 금연으로 나라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이것은 고종황제를 비롯해 일반 백성까지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운동이 됐다. 한편 천주교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천주교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 예로 1914년 중국의 벽돌제조 기술과 유럽의 설계로 건립한 성유스티노신학교에 부지를 기증했다. 그래서인지 서상돈의 집에는 붉은 벽돌 담장의 일부가 남아 있다.

골목 여행을 하려면 차에서 내려야 한다. 골목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놓지 않고, 두 발로 길을 밟고, 내키는 대로 서거나 간다. 덕분에 조선의 약시장도, 근대의 양옥집도, 민족의 큰 어른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것들로부터 지금이 있음을, 그분들의 정신이 우리를 살게 하고 있음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정보]

● 대구골목(2코스)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 집결지 - 동산선교사박물관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북대구 IC - 시청, 신천대로 방면으로 우측방향 - 침산교 지하차도 - 신천대로 - 대구국제공항, 북구청방면으로 지하차도 옆길 - 성북교남단교차로에서 ‘북구청’ 방향으로 우회전 - 성북로를 따라 246m 이동 - 북침산네거리에서 침산네거리 방향으로 좌회전 - 태평지하도 진입후 침산로를 따라 이동 - 성서 IC 반고개 방향으로 우회전 - 달구벌대로 따라 이동

● 대중교통
대구북부 시외버스 정류장 - 순환3-1(또는 356) - 서문시장역 하차 5번 출구 - 계산오거리 방향으로 400m

< 주요 정보 >
대구골목투어
http://gu.jung.daegu.kr
해설사와 함께하는 골목투어: 홈페이지에서 참가신청 (오전 10시, 오후 2시), 단체투어는 전화신청
골목투어 지도, 안내책자 신청: 홈페이지에서 직접 다운로드 하거나 홍보물 신청, 스마트폰으로 골목투어앱 다운로드

● 골목투어코스 주요 포인트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3.25km): 경상감영공원 - 대구근대역사관 - 향촌동 - 경찰역사체험관 - 달서문 - 삼성상회 - 달성공원
2코스 근대문화골목(1.54km): 동산선교사주택 - 계산성당 - 제일교회 - 약령시 한의약박물관 - 진골목 - 화교협회
3코스 패션한방길(2.65km): 주얼리타운 - 교동귀금속거리 - 동성로 - 남성로(약령시) - 서문시장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4.95km):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삼덕동문화거리 - 김광석길 - 봉산문화거리 - 대구향교 - 건들바위
5코스 남산100년향수길(2.02km): 반월당 - 관덕정 - 성유스티노신학교 - 성모당 -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대구문화재단 (이상화, 서상돈 고택 앞 거리연극)
http://www.dgfc.or.kr / 053-422-1210
공연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기간: 2014년 5월 17일~10월 29일 (7,8월은 혹서기로 공연 없음)
시간: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또는 오후 2시 (사이트에서 확인)

< 음식 >
약전식당: ‘정소아과의원’ 뒤편에 위치한 건물. 이 또한 1930년대 지어진 한옥집인데 대구에서 유명한 한식집이기도 하다. 드라마 ‘사랑비’에서 인하(장근석)의 하숙집으로 등장한 장소다.
정식 1만2000원 / 모듬회 3만5000원 / 콩국수(여름) 7000원
대구시 중구 남일동 132 / 053-252-9684

진골목식당: 진골목 역사와 함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식당이다. 육개장과 함께 늙은 호박으로 만든 호박전이 유명하고 가격도 저렴해 여행자뿐 아니라 지역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육개장에는 고사리나 숙주가 없는 것도 특이하다.
육개장 6000원 / 육국수 6000원 / 호박전 5000원 / 콩나물밥 5000원
대구 중구 종로2가 66-5 / 053-253-3757


음악다방 쎄라비: 드라마 ‘사랑비’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장인데, 종영된 후에도 카페로 운영해 이제는 대구의 명소가 됐다. 3.1운동길을 내려오면 만나는 곳으로 계산성당으로 길을 건너기 전에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입장료 5000원 (음료 포함. 커피, 녹차, 주스 중 택10
대구 중구 동산동 244 2층/ 053-255-8308


미도다방: 진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옛날식 다방이다.
강황꿀차 3000원 / 약차 2만5000원 / 쌍화차 3000원 / 커피 2000원
대구 중구 종로 2가 66-1 / 053-252-9999

< 숙소 >
대구 진골목 게스트하우스 : 진골목에 자리잡고 있어서 골목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나 있다.
가격(1인): 2만~2만5000원
예약문의: 070-7504-4115 / http://jin_danim.blog.me / 대구 중구 종로2가 84-2 3층

그린스텔: 대구시 추천 숙박시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다. 이 사이트를 이용해 예산과 여행계획에 맞는 숙박업소를 선택하고 예약할 수 있다.
대표안내전화: 053-803-4111 / http://www.greenstel.or.kr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