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예측 대실패가 부른 '9·15 대정전'
전력대란 공포는 끝났나 / 정부 수급대책 불안한 이유
박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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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으로부터 안전할까. 정부는 신규발전소가 추가된 데다 지난해보다 덜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정전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에도 정부는 '문제 없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리고 그해 9월15일 정부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전력대란으로 전국이 어둠에 휩싸였고 국민과 기업들은 재산 및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전력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보장하기엔 이르다. 이에 <머니위크>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전력대란 공포에 대해 짚어봤다. 원전의 안전성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전력낭비의 현장을 고발하고 우리나라 전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양수발전소를 찾아봤다. 아울러 전기료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지난 2011년 9월15일, 전국 곳곳이 어둠에 휩싸였다. 이른바 '블랙아웃'이라 불리는 사상 최대의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동안 낮아졌던 기온이 갑자기 오르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전력이 소모되면서 전국 곳곳이 어둠에 잠겼다. 한국전력은 사실상 여름이 지났다고 판단해 예비전력량을 줄인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미뤄왔던 발전기 정비에 들어간 상황이라 돌릴 수 있는 발전기 수도 적었다.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한전은 순환전력공급으로 피해 최소화에 나섰다. 하지만 전국의 가정과 기업 곳곳에서 적지 않은 재산상 피해와 혼란을 겪었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수족관, 냉장고, 영업장, 산업시설 등이 갑작스런 정전으로 가동을 멈췄다. 이후 국민들은 한동안 전력위기에 시달려야 했고, 그 결과 매년 하절기와 동절기마다 '전력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올해 역시 정전사태 위기감이 감돈다. 특히 올해는 5월부터 한여름 날씨가 찾아왔다. 7월 이후에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9·15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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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거래소 상황실 /사진=머니투데이DB |
◆정부 "올 여름 전력난 발생률 낮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올 여름 냉방온도 제한의무를 완화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전기사용량 규제도 폐지했다. 다만 상가가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계속 단속하기로 했다. 지난 6월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하절기 전력수급대책'을 발표했다. 에너지 낭비행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되 온도제한 등은 자율에 맡겨 국민 불편을 줄인다는 취지다.
현재 정부는 올 여름에 전력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계약전력 100㎾ 이상 사업장과 건물의 경우 피크시간에 실내온도를 26℃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던 의무를 '권장'으로 완화했다. 대규모 전기사용자 사용제한 조치도 없앴다. 공공기관의 경우 월 전기사용량 15%, 피크시간 20% 절감 등 전기사용량 규제를 폐지했다.
절전규제를 강제규제에서 자율준수체제로 전환한 정부의 판단은 지난 겨울부터 전력수급이 안정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월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쳤지만 그동안 멈춰있던 원전이 재가동되면서 전력수급이 안정세를 유지했다. 올 여름 상황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발전설비만 300만㎾ 늘었다. 정지됐던 발전소도 재가동되면서 400만㎾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가 예상되는 8월 셋째주 예비전력이 550만㎾로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올 여름은 큰 위기 없이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 여름 최대전력수요는 7900만㎾, 최대공급능력은 8450만㎾"라며 "신규발전기 준공과 정지됐던 원전이 복구돼 공급능력이 늘었고 지난해보다 덥지 않은 날씨로 냉방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최근 3~4년간 7~8월에는 항상 전력난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휴가가 끝나는 8월 중순에는 전력수요가 최절정에 달해 전력 쥐어짜기가 반복됐다. 따라서 올 여름도 전력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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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대규모 정전사태 당시 시내의 현금자동입출금기마저 정지해버렸다. /사진=머니투데이 DB |
◆9·15 대규모 정전사태 벌써 잊었나
최근 몇년 사이 전국의 전력사용량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최근 4년간의 전국 전력사용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력사용량은 2011년보다 9.4% 증가했다. 신규발전기가 추가되고 멈췄던 원전이 재가동된다고는 하지만 전력 과다사용으로 인한 정전 가능성은 올해도 여전히 열려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전력계통은 1987년 최대 전력수요 1000만㎾를 돌파한 후 지난해 8000만㎾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은 30년 가까이 연평균 7% 이상의 고도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적어도 9·15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세계 일류수준의 전력공급 신뢰도와 양질의 전력품질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9·15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에 실패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전력난 원인으로 낮은 전력자립률이 꼽히는 상황에서 또 한번 대규모 블랙아웃사태가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갑작스런 정전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며 "정전사태는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의료사고, 교통사고, 산업재해와 같은 안전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전력난을 극복할 주체는 국민이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난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정부에 있다"며 "우리나라 전력계통은 고도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톡톡히 치렀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년간 이어진 전력난 탓에 산업계에서의 사고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기술인협회가 실시한 '비상전원 운용현황 설문조사'에 따르면 1496개 현장조사 응답수의 68.5%가 최근 3년 내 정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해 크고 작은 정전이 자주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더구나 이들 현장에서 부하테스트를 실시한 곳은 33.8%에 불과했다. 연간 10회 이상 실시한 곳은 10.4%에 그쳤다. 비상발전기와 달리 정전 시 즉각 전원을 공급해주는 무정전전원장치(UPS)도 설치율이 40.2%에 불과할 정도로 정전대책이 허술했다.
비상발전기는 정전 시 가동을 시작해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순간적인 정전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수술실, 응급실, 교통신호체계, 데이터센터 등에서는 무정전전원장치 도입이 필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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