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라는 게임이 있다. 폭발 직전의 폭탄을 옆으로 계속 돌리다 누군가의 손에서 폭탄이 터지면 그 사람은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이런 폭탄 돌리기는 국내 임대차시장에도 존재한다. 폭탄은 권리금이고 참가자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주를 이루는 상가임차인이다. 자신의 손에서 폭탄이 터진 임차인은 결국 권리금 손실이라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된다. 더욱이 공평한 게임도 아니다. 굳이 이분법적 잣대를 적용하면 '가진자'(임대인)와 '못 가진자'(임차인) 사이의 게임에서 항상 폭탄을 끌어안는 쪽은 결국 못 가진자다.

이렇듯 불합리한 임대차시장의 상가권리금은 1970~80년대 산업화 시절 고향을 떠난 농민들이 임금노동자로 흡수되지 못하고 영세자영업 계층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점포의 위치, 단골손님 및 상권의 규모 등 상가의 가치를 인정해 상인끼리 주고받았던 할증금 성격이다. 그동안 변변한 통계조차 없어 정책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합리한 임대차시장의 권리금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정부가 자영업 생계대책의 일환으로 권리금 법제화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취지는 장사가 잘되는 상가건물주가 임차인을 내쫓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거나 임대료를 대폭 올려 새로운 임차인을 받아들이는 악덕 건물주의 횡포를 막겠다는 것.

그러나 쉽지가 않다. 권리금을 법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머니위크>는 정부가 추진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미흡한지 짚어봤다.
 
/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 상가권리금, 법 테두리 속으로

개정안의 핵심은 첫째, 모든 임차인이 5년간 계약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 조항이다. 상대적으로 을(乙)의 위치였던 임차인이 권리금 주장의 기초가 되는 대항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임차인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만 돌려받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 임차인이 권리금을 내고 입주할 새로운 임차인을 데려와도 임대인이 계약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임대인이 직접 물색한 새로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받아 챙기는 경우도 잦았다. 따라서 개정안에는 기존 임차인이 가게를 넘겨받는 새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임대인이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포함됐다. 임대인이 협력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권리금을 넘지 않는 선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둘째,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임대인이 합당한 이유 없이 계약거절 등으로 박탈하는 것을 막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방해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같은 상권에도 들쑥날쑥한 권리금을 조율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권리금 산정을 위한 기준을 고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발표에도 불구하고 권리금의 범위에 대한 논란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거래되는 권리금은 대부분 '바닥권리금'이다. 시설권리가격과 영업권리가격은 객관적인 파악이 가능하지만 바닥권리금의 경우 점포구입자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가격책정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셋째,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존세입자가 주선한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했다. 이 항목은 찬반이 엇갈린다. 건물주가 기존세입자에게 입주를 원하는 특정업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임대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된 것. 정당한 사유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분쟁의 소지가 다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 역시 지난 10월16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계약당사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함과 동시에 임대인의 소유권을 지나치게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입법과정에서 보완을 촉구한 바 있다.
 
◆ 개선안, 취지는 좋지만 약점도 있어

소상공인 보호라는 취지에 대해서는 여야는 물론 다수의 전문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전 임차인과 새 임차인이 권리금 표준계약서를 쓰도록 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증세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계약서에 권리금을 명시할 경우 전 임차인이 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세금납부를 피하려 '다운계약서'를 쓰거나 계약서 작성을 기피할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측은 이번 개선안이 증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권리금은 소득세법에 나와 있는 기타소득의 하나"라고 표현하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현실적으로 표준계약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다. 그러나 법에 기대야 하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표준계약서를 쓸 수밖에 없다.

또한 개선안 자체의 몇가지 약점도 노출됐다. 우선 계약기간 5년을 보장하더라도 현행 제도처럼 건물주가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도록 내버려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현재 환산보증금이 4억원 미만인 경우 연간 임대료를 9%까지 올릴 수 있는 조항은 그대로 유지했다. 건물주인이 고의적으로 임대료를 올리면 권리금에 발이 묶인 임차인은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권리금보호제도 시행 이후 건물주가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내지 못할 경우 임대료를 대폭 올리는 방법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선안이 발표된 이후 가장 큰 논란거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건물을 철거할 때는 권리금 보상장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개발·재건축 시 권리금 피해를 구제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나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을 개정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재건축·재개발 구역 내 상가 세입자는 4개월가량의 휴업손해를 전보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안은 반쪽짜리로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권구백 전국상가세입자협회장은 "실제로 건물주가 상가 재건축을 핑계 삼아 세입자를 내쫓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건물주가 안전상의 이유를 대며 재건축하겠다고 해 투자한 권리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