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놓고 정부와 철강업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와 철강업계 모두 저가 중국산 철강재를 견제하는 것은 똑같다. 정부는 철강재에 대한 KS 규격 기준을 강화해 품질 미달 부적합 철강재의 유통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오히려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며 중국산 수입재가 KS 기준을 지키지 않고 버젓이 유통되는 부분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제철 용광로.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현대제철 용광로.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한·중 FTA 타결로 중국산 범람 우려

한국철강협회가 조사한 지난 10월 철강수입동향에 따르면 중국산 철강재 수입은 전월보다 1% 감소했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2.1% 증가했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 수입량을 살펴보면 중국산 철강재는 총 1117만5000톤으로 전년 동기대비 37.1% 늘었다. 이 기간 수입량만 보더라도 연간 사상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사상 최고 수입량을 보인 지난 2008년 1431만톤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어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중 FTA 타결은 중국산 철강재의 공세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철강 무관세 협정에 따라 대부분의 수입 철강에 대해 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중국이 한국시장을 공략하는 데 관세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철강업계는 공급 과잉의 근원지인 중국이 FTA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철강 유통망으로 보폭을 넓히면 국내시장을 더욱 빠르게 잠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이 국내산 철강제품에 물리는 관세는 3~10%다. 이를 단계적으로 없애면 국산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중국제품이 워낙 싸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철강제품에 기술력이 더해지면 국내시장 잠식은 초읽기에 들어가는 셈이다.

특히 중국산 저가 짝퉁 철강재가 국내시장에 범람하는 것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철강업계는 중국 정부의 특수강 수출증치세 환급 정책 폐지와 같은 정책 개선을 기대했다. 이 정책이 없어지면 철근을 합금강으로 둔갑시키는 중국업체들의 편법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수출증치세 환급 정책 등은 FTA 양허안에서 제외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제품 개발능력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며 “원가 절감과 기술 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로 중국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제강. /사진제공=동국제강
동국제강. /사진제공=동국제강

◆정부, "KS규격 기준 개정해야"

저가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시장 잠식이 우려되자 정부는 철근 형강의 무게 허용차 개정에 나섰다. 철근 형강의 무게 허용차 개정은 KS규격 제정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의 기술이 발달한 가운데 한·중 FTA 타결 이후 저가 중국산 제품의 유입을 막기 위해 허용차 기준을 높이겠다는 것. 건설현장에 납품하는 철강재는 KS인증이나 동등 이상의 품질을 취득해야 하는 만큼 KS 규격의 기준이 높아지면 비관세 장벽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또한 국내 철강업체의 제품이 허용차 하한선에 근접해 있는 점도 정부가 무게 허용차 개정을 밀어붙이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범위를 줄인 새로운 기준을 추가해 정밀도와 정확도를 확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H형강의 경우는 치수 오차가 ±3%일 때 무게는 ±4% 차이가 발생한다. 무게 허용차와 치수 허용차 사이에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철강업계가 허용차의 하한선에 맞출 정도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범위를 줄여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며 “FTA 시대에 우리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정밀성”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가기술표준원은 현재 철근의 중량 오차가 지름 10~15㎜인 제품은 ±6%, 16~28㎜ 제품은 ±5%, 29㎜ 이상 제품은 ±4%를 허용할 계획이다. 지름 10㎜, 길이 8m 짜리인 철근 1가닥의 이론중량이 4.48㎏인데 4.21㎏짜리로 생산해도 된다는 뜻이다. 또 H형강의 경우는 두께 10㎜ 이상은 ±5%, 10㎜ 미만은 ±4%의 중량 허용오차를 둘 방침이다. 다만 정부와 철강업계의 시각차가 커 단기간 내에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11월12일 KTX 대전역사 회의실에서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계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철근 및 형강 허용차 정비방안 공청회’를 열고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했다. 이 결과에는 철근과 H형강의 KS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겨 있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한-중FTA 관련 정부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기태 기자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한-중FTA 관련 정부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기태 기자

◆철강사, "방향 자체를 잘못 설정"

무게 허용차 개정에 대해 가장 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쪽은 철강업계다. 정부 방침대로 결론이 나면 국내 철강업체들은 중량 오차 축소에 비례해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KS 기준이 강화되면 자체 품질관리 수준도 동반 상승하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KS 규격 기준이 개정되면 기존에 정상이었던 제품들이 불량 처리돼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철강업계는 허용차 축소가 기업의 수익성 감소를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 절감 차원에서 허용차 한계치로 조업조건을 맞춰 온 철강업체의 경우는 체감하는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허용차가 축소돼 실질 중량이나 두께가 기존보다 늘어날 경우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철강 가격 결정권을 건설사가 쥐고 있기 때문에 결국 원가부담만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방향 자체를 잘못 설정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산 철강재가 KS 기준을 지키지 않고 버젓이 유통되는 상황부터 해결해야 하는데도 허용차 축소를 강행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제품, 수입제품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KS 규격 기준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