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서히 밀려오는 쓰나미 같다"고 표현했다. "'앗 저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순식간에 덮치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가 온몸에 휘몰아쳤다"고 말했다. 빚이라는 쓰나미 속에서 가족이라는 끈을 잡고 살아 돌아온 한 남자가 한 말이다.

최철원씨(37·가명)를 만난 건 따뜻한 봄바람이 불던 올해 4월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지하경제를 파헤치다>라는 기획기사 중 '불법 사채시장'에 대한 취재를 하며 만난 사이다. 그는 서울의 한 동네에서 조그만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장사가 어려워 이곳저곳에서 빚을 끌어다 쓰는 '불량채무자'였다. 삐쩍 마른 몸에 수척한 얼굴, 그리고 생기없는 눈빛에서 그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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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직장인이 빚더미 안기까지

장사를 하기 전 최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결혼도 했고 2살 된 예쁜 공주도 있는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조그만 아파트도 한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좀 더 벌어보겠다',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욕심에 빚을 져 장사를 시작한 게 문제였다. 특별한 기술도, 장사경험도 없는 그가 선택한 사업은 국내 유명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었다.

최씨는 이 사업에 1억8000만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했다. 부모님에게 1억원을 빌리고 아파트담보대출로 5000만원, 여기에 서울신용보증재단을 통한 자영업자창업대출로 3000만원을 빌렸다. 사업자금 모두 빚이었던 셈이다.

사업초반에는 장사가 잘됐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가게는 당시 독일월드컵 특수에 힘입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자리를 잡아 가족 모두가 넉넉한 삶을,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했다. 빚으로만 장사를 시작한 그였기에 버는 돈은 금세 이자나 부족한 설비비용으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최씨는 개의치 않았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드컵 특수가 끝나고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이 나오면서 그의 삶은 엉망이 됐다. 장사가 잘되던 가게는 인근 롯데마트의 영향에 직격탄을 맞았다. 두달가량 가게는 파리만 날렸고 가게임대료(월 180만원)와 직원들에게 임금을 줄 형편도 못됐다. 결국 최씨는 자신이 사용하던 신용카드 3개로 현금서비스 1100만원을 받았다.

최씨는 이 돈으로 건물주인에게 임대료를 내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줬다. 남은 돈으로 대출이자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물건 값을 지불했다. 1100만원을 현금서비스 받은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그의 손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이때만 해도 이 위기만 넘기면 예전처럼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 기운 장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현금서비스를 갚기 위해 카드론 대출을 받았다. 조금씩 받아쓰던 카드대출은 돌려막기를 하는 사이 3000만원에 이르렀다.

돌려막기가 힘들어지자 최씨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1금융권)들은 자영업자에게 인색했다. 여러 은행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지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는 결국 제2금융권을 찾았다. 이곳은 비교적 수월했다. H캐피탈은 상담 이후 간단한 서류작성을 마치자마자 2000만원을 빌려줬다. 이 돈으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카드대출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

허리띠 졸라매도 커지는 빚

이후 그는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 맸다. 최소인원으로 가게를 꾸린 것이다. 혼자 영업준비부터 서빙, 배달까지 했다. 이렇게 1년을 넘게 운영했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인건비를 줄이자 매출도 감소했다. 직원이 없어 즉각 손님에게 응대하지 못하자 가게를 찾는 고객이 줄어든 것이다. 이러는 사이 상황은 더 안 좋게 변했다. 기존에 내던 아파트담보대출이자 30여만원, 자영업자창업대출이자 20여만원, 현대캐피탈 대출이자 80여만원 등 대략 월 130만~140만원의 이자가 최씨의 목을 서서히 조여 왔다.

더욱이 그동안 이자만 냈던 자영업자창업대출은 원리금 균등상환이 시작돼 이자를 제외하고 분기에 200만원의 돈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가 시작됐다. 본사는 물량 밀어내기를 하고 물건값을 요구했다. 돈을 입금하지 않자 물건 공급이 중단됐다.

가게를 닫을 수 없었던 최씨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돈을 빌리러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제2금융권마저 최씨를 거절했다. 대신 제2금융권 대출담당자는 그에게 대출브로커를 소개해줬다. 대출브로커는 각종 서류를 요구했다. 너무나 절박했던 최씨는 브로커가 요구하는 서류를 보냈다. 이내 제3금융이라 불리는 대부업체에서 전화가 빗발쳤고 얼마 후 통장에는 2000만원이 입금됐다. 이때 최씨가 받은 대출은 약 2300만원. 총 6개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며 선이자로 300만원을 낸 것이다.

최씨는 이 돈으로 급한 불을 껐다. 밀린 가게 임대료와 본사 물건값, 여러 대출이자 등을 냈다. 남은 돈은 다시 가게를 살릴 요량으로 전단지와 인터넷 광고 등에 투자했다. 잠깐 효과가 있었지만 결국 허사였다.

그동안 매달 내는 이자는 대부업체의 이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총 6곳에서 빌린 대부업체에 매달 이자로만 150만원가량 지불했다. 사정이 어려워 며칠이라도 밀리면 대부업체에서 가게로 찾아와 협박 수준의 빚 독촉을 했고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기다리며 그날 번 현금을 가져갔다. 이렇게 시달리는 사이 최씨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만 갔다. 극심한 우울증까지 왔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고 한다.

◆ 가족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 결심

자살을 결심한 날 최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와 딸아이를 보기 위해 집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생활비를 준 적이 없어 미안해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아이가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그때 눈을 뜬 딸아이가 "아빠 왔다"며 반기는 모습에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최씨는 아내와 딸아이를 보며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최씨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다음날 3년 동안 운영했던 가게를 내놨다. 1억8000만원의 투자금을 들인 가게였지만 결국 보증금 5000만원만 손에 쥐고 나왔다.

이 돈으로 대부업체와 캐피털의 돈을 변제했다. 아파트도 팔아 나머지 빚을 정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에게는 한푼도 남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생활이 힘들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물론 아내와 딸이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큰 힘이 됐다. 그는 최근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지원센터를 찾아 정기적으로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조만간 다시 직장생활도 시작할 예정이다. 첫 월급을 받으면 아내와 함께 재무설계를 받을 계획이다. 최씨는 요즘 행복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돈을 좇지 않고 돈에 시달리지 않아 좋단다. 최씨는 말했다. "돈의 노예로 살았던 최근 몇년이 내게는 지옥 같았습니다. 욕심을 버리니 삶이 이렇게 즐겁고 편할 수가 없네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