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 전과자, 김건강, 김현찰, 김이상, 엄청난, 도우미, 주범인, 김혼수, 왕재수, 유치장, 조사중. 몇년 전 인기리에 종영된 KBS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등장한 재미난 인물들이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삼형제의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경찰공무원으로 살아온 김순경의 갑작스런 은퇴 후의 삶을 조명한 가족드라마이기도 하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를 다시 보면서 100세시대 은퇴설계 키워드를 살펴보자.

◆노후준비 첫걸음 '가족관계'

드라마에서 아버지(김순경)는 철저한 가부장적 인물로 등장한다. 집에서는 아내(전과자)와 자식들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려운 아버지다. 첫째아들(김건강)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랐지만 번번이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아버지에게 미운털이 박힌 인물로, 아버지는 늘 첫째아들을 형편없는 놈으로 치부해 버린다.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둘째아들(김현찰)은 못난 장남 대신 일찌감치 사회에 나와 성공하며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하는 인물이지만 부모의 편애로 인해 늘 가슴앓이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셋째아들(김이상)은 김순경의 자랑이자 전과자의 사랑이자 경찰집안의 맥을 잇는 믿음직한 아들이다. 아내(전과자)는 때로는 이기적이지만 어리숙한 모습으로, 가부장적인 남편이 늘 불만인 평범한 이 시대의 아줌마다.

김순경은 근면성실하게 근무했지만 갑자기 경찰직을 그만두게 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김순경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밥솥 사용방법을 몰라 식사 한끼도 해결하기 어려운 김순경. 은퇴를 하고 나니 남는 건 시간이고 부딪히는 건 가족이다.

'노후를 잘 준비해놓은 사람들의 7가지 충고'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한마디로 평소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예컨대 '자식과 대화하라', '평소 아내를 도와줘라' 등이다. 이 두가지는 은퇴시점이 다가올수록 벼락치기로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평소부터 아내, 자식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노후준비의 첫 단추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인생후반기, '을 인생' 연습 필요

몇년 전부터 갑(甲)과 을(乙)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다. 영원한 갑도 없고 을도 없다. 갑이 을이 되거나 을이 갑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한 김순경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법무사 사건중개 브로커가 된다. 경찰직을 그만두니 한푼이 아쉽다. 평생 누구한테 무언가를 부탁해본 적이 없는 김순경은 옛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소소한 사건의뢰를 부탁하지만 동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평생 직장과 집에서 갑의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은퇴자들이 쉽게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갑의 자리만 찾기 때문이지 않을까. 은퇴는 을의 인생으로 새 출발하는 것이지 또 다른 갑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노후준비는 갑의 눈으로 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깝게는 가정과 이웃, 넓게는 직장에 이르기까지 인생 2막 을의 삶을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퇴직자, 금융사기꾼이 노린다

드라마에서 김순경은 갑작스런 퇴직으로 브로커 일이 여의치 않자 새로운 일을 찾게 되고 퇴직금 전부를 프랜차이즈에 투자했다가 창업사기를 당한다. 대부분의 퇴직자가 창업을 통해 대박을 노리지만 현실은 쪽박인 경우가 많다. 그럴듯한 창업아이템 및 고수익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수익보장을 강조하는 투자는 일단 사기라고 보고 주의하는 것이 좋다.

특히 최근 노후자금을 노린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고령자와 은퇴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전국 만 24~64세 25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1%가 금융사기와 관련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50대와 60대 가운데 금융사기 관련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각각 25.4%, 25%로 나타나 20대에 비해 1.5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50~60대 4명 중 1명이 금융사기 대상이었던 셈이다. 또한 금융사기 피해자들이 입은 손실액은 평균 3825만원이었지만 60대의 피해금액은 평균 8250만원으로 전체 평균의 2.15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말이 있다. 투자에 따른 위험 없이 고수익만을 보장해주는 일은 없음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자. 하지만 개인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사업계획서 또는 관련 근거자료를 문서로 받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당한 노후 준비해야

갑작스런 아버지의 퇴직은 삼형제에게도 걱정으로 다가온다. 어머니는 아들 셋을 모아 놓고 "이제부터 한달에 정해진 용돈(100만원)을 보내라"고 말하자 삼형제는 마음이 무겁다. 이제 마음을 새롭게 잡고 고물상을 운영해 자리잡으려는 첫째아들, 사업으로 인해 부채상환도 버겁기만 한 둘째아들, 맞벌이부부지만 아이 출생으로 지출이 늘어날 것 같은 셋째아들 등 모두 사연이 있다. 가능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자식들의 마음도 편치 못하다.

'대한민국 60대는 늙은 거미'라는 얘기가 있다. 늙은 거미는 먹을 게 없으면 새끼에게 자기 살을 내주는 습성이 있다.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찾온 낯선 노후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대한민국 60대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손을 벌리자니 자식들의 삶 또한 고단하기는 매한가지다.

은퇴한 부모가 자녀한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경제적 자립이고, 은퇴한 부모에게 자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경제적 자립이다. 잘 키운 연금하나 세 아들 부럽지 않은 것처럼 자식과 국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당당한 노후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