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대규모 사업재편이 한창이다. 최근에는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키로 하는 등 사업부문을 적극적으로 뜯어 고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재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6개월 넘게 와병 중이고 그룹에 새로운 수익사업이 필요한 상황과 맞물려 이뤄진 ‘생존’의 수단으로 풀이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세자녀를 중심으로 한 3세 승계 구도가 명확해졌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삼성그룹이 계열사 매각이라는 결단을 내린 배경과 앞으로의 변화, 세자녀의 후계구도 등에 대해 살펴봤다.

◆비주력사업 정리… 사업재편 본격화

삼성그룹은 지난 11월26일 석유화학산업부문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방위산업부문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등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은 내년 1~2월 실사와 기업결합 등 제반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된다. 계약 규모가 시장가격으로 1조9000억원대인 만큼 이번 거래는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로 평가된다. 앞으로의 경영성과에 따라 한화가 100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옵션도 붙었다. 매각대금은 최대 2조원에 달한다.

 
'새판' 짜는 삼성, 뭘 또 노리나

한화그룹은 ㈜한화를 통해 삼성 계열사 보유 삼성테크윈 지분 32.4%를 8400억원에 ㈜한화가 인수한다. 삼성테크윈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10.0%), 삼성탈레스(50.0%) 및 삼성종합화학(23.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자사주 제외)는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가 각각 27.6%와 30.0%를 총 1조600억원에 가져온다. 이로써 삼성테크윈이 보유한 삼성종합화학 지분 23.4%를 더해 81.0%(자사주 제외)를 확보하게 된다. 삼성종합화학은 삼성토탈의 지분 50.0%를 갖고 있다.

삼성테크윈의 대표주주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증권 등이다. 삼성종합화학의 주주사는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등이다.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38.4%)은 18.5%의 지분을 남기며 한화그룹의 석유화학부문에 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계열사 중 경쟁력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회사를 매각해 그룹을 전자, 금융·서비스, 건설·중공업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는 시각이 많다.

이번 빅딜은 한화그룹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을 인수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삼성테크윈이 삼성종합화학 지분을 갖고 있어 패키지로 인수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분야는 삼성그룹에 비주류지만 한화그룹에는 전통적인 주력사업이라 앞으로의 ‘사업 시너지’가 기대된다.

실제로 삼성그룹이 이번 빅딜을 통해 비주력사업을 정리하면 지배구조는 단순화된다. 이후 삼성그룹이 새로운 수익사업 육성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보다는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부진과 지난해부터 업황부진을 겪고 있는 계열사 및 사업부를 합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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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삼성의 사업재편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은 재계 상위 기업들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다. 삼성은 한화그룹에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부문 4개 계열사를 매각하기 이전부터 과감한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은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을 당시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것이 출발점이다. 제일모직은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1조원에 매각하고 급식사업을 담당하는 웰스토리를 분사했다. 첨단소재부문이 남아 있는 제일모직은 지난 7월 삼성SDI와 합병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1월 건물관리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하고 6월에 상장했다. 지난 7월에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꾸면서 패션 및 레저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제일모직은 오는 12월18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삼성종합화학은 지난 4월 삼성석유화학을 흡수합병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앞서 삼성그룹은 석유화학산업을 살리기 위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에 이어 삼성토탈도 합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프랑스 토탈에 삼성토탈 보유 지분 50% 전부를 인수하겠다는 뜻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석유화학산업을 합쳐 경쟁력을 높이려 했으나 결국 한화그룹에 석유화학산업부문을 매각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셈이다.

또 시스템통합(SI)업체인 삼성SDS는 지난해 말 삼성SNS를 흡수합병하고 지난 11월14일 상장했다. 삼성SDS는 상장을 통해 글로벌 ICT기업으로 성장할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 미국 코닝에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 751만주(2조203억원)를 매각했다. 현재 제조부문 계열사들이 보유한 금융 계열사 소수 지분도 대부분 처분했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 지분 역시 정리된 상황이다.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다만 지난 9월에 합병을 추진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 최근 합병 재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삼성엔지니어링과 합쳐질 가능성이 다시 점쳐진다.

무엇보다 이번 삼성·한화 빅딜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벌어진 초대형 빅딜이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 시대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경영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이번 매각이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부문에 집중된 것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분야를 정리하고 미래 신수종 사업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헬스케어부문을 미래 청사진으로 그리고 있다”며 “계열사 매각을 통해 확보하게 될 1조9000억원을 헬스케어부문을 포함한 신사업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 ‘완성단계’

이처럼 삼성그룹은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부문 매각으로 그룹 구조를 전자, 금융·서비스, 건설·중공업으로 단순화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 간 자율 거래로 각 기업이 갖고 있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따랐다는 점에서 재계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그룹의 이 같은 결단이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겠다는 또 다른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 회장이 지난 5월 초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6개월 넘게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상황에서 드러난 빠른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은 이를 뒷받침한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이번 빅딜은 이 회장이 입원 중에 이뤄진 만큼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린 첫 사례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현재 이 회장의 세자녀를 중심으로 한 3세 승계 구도 및 상속 후 역할이 명확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수익이 낮은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면서 이 부회장은 전자, 금융·서비스, 건설·중공업 등 3대 핵심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매각되는 삼성그룹 4개 계열사에는 오너 지분이 거의 없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보유한 삼성종합화학 지분이 4.95%이고 이 회장의 삼성종합화학 지분은 0.97%다. 또 오너가에는 석유화학산업부문 계열사에 공식 직함을 가진 이도 없다. 승계 전망을 애매하게 만들던 석유화학산업부문 계열사를 처분함으로써 이 부회장이 전자·금융·건설 등 그룹의 주력 사업부문을 이끄는 구도가 보다 확실해졌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상사·유통·레저(리조트)부문을, 이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 사장은 패션사업과 광고·미디어사업(제일기획)을 전담하는 분할구도로 윤곽이 잡힌 셈이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건설부문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삼성그룹의 건설사업은 삼성물산(토목·건축·주택), 삼성중공업(토목·건축), 삼성엔지니어링(플랜트), 제일모직(골프장·리조트 건설) 등으로 분산돼 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불발됐지만 추후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물산이 다른 계열사의 건설부문을 흡수할 여지도 있다.

현재까지의 공식화된 결과로 볼 때 이번 삼성·한화 빅딜이 오너 3세의 지분 구조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확실한 것은 이 회장의 세남매가 나눠 갖게 될 3세 승계 구도 윤곽이 여러 차례의 ‘새판’ 짜기를 통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한화 빅딜은 한화 측이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이 부회장이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그룹이 석유화학과 방위산업부문을 털어내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만드는 작업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