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조선의 업타운'을 노닐다
송세진의 On the Road / 삼청동·세종마을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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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북악산. |
광화문광장에선 고개만 돌리면 된다. 시끄러운 서울의 한복판이지만 광화문쪽을 보는 순간 조선시대 산수화 한폭이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삼청동이, 왼쪽으로 세종마을이 있는데, 왕실의 역사만큼이나 동네의 이야깃 거리도 많다. 이곳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광화문광장에 눈이 오면
눈 내린 광화문은 어떨까. 세종대왕의 책 위에도 이순신 장군의 어깨에도 눈이 쌓였다. 광장에서 보면 하얗게 덮인 광화문 지붕, 이어지는 궁벽이 겨울 빛 푸른 하늘과 그림같이 어울린다. 그 뒤로는 잘생긴 북악산의 산세가 이 모든 것들을 감싸 안으며 한마디 하는 듯하다. ‘이곳이 바로 조선의 도읍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큰 대문이다. 이도 우리 역사와 함께 굴곡이 많았다.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고, 옮겨지고, 복원되는 일들을 겪었고 지난 2010년 옛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있던 일제시대 건물(중앙청)을 해체했고, 경복궁은 여전히 복원 중이다. 시간이 되면 경복궁도 둘러보고, 그렇지 않다면 광화문만으로도 볼거리가 충분하다.
광화문 앞 해치상은 신화 속 동물이며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마로부터 궁궐을 지키기 위해 불을 잡아먹는다는 충직한 성질을 가진 해치를 문 양 옆에 세웠다. 사람들이 다툴 때는 나쁜 사람을 받아버리는 정의감도 있다고 하니 이 앞에선 시비가 없어야 하겠다. 시간을 잘 맞추면 수문장 교대식도 볼 수 있다. 성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임무 교대를 하는 것인데 접견, 인사, 복장점검 등 일정한 의식 속에 옷차림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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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삼청동의 한옥. |
◆ 다 가졌다, 삼청동
삼청동은 캐도 캐도 끝이 없다.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이고 문화·역사·트렌드를 동시에 가졌다. 미술관이 200여개, 화랑이 360여개, 음식점은 4000개가 넘는다. 심지어 도시와 산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8명의 판서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고관대작들이 살던 곳, 즉 조선의 업타운이다. 조선의 무기고가 있었고 사간원이 있었고 화초를 기르던 장원서가 있었다. 지금의 정독도서관 내에는 조선시대 왕가의 족친 관계의 일을 맡았던 종친부 건물이 있다. 궁궐 동네에 살았으니 그들의 생활방식도 기품이 있었을 것이고, 궁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다. 알록달록한 벽화와 카페,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상점, 독특하고 먹음직한 길거리 음식,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과 바가 저마다 삼청동에 올 이유를 제공한다. 이곳에 오면 외국인관광객, 서울사람, 지방사람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큰 길과 골목길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다. 때로는 넓고 높게 시야를 들었다가, 한번씩은 가게에서 내 놓은 소품에 고개를 푹 숙이고, 옷 가게 앞에서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친구들과 의논이 심각하다.
산으로 더 오르면 북악스카이웨이에 닿는다. 북적대던 도시가 삽시간에 산동네로 변하며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바꾼다. 북악스카이웨이는 서울 야경 명소로도 손꼽힌다. 삼청각은 행정구역상 성북동에 속해있지만 이름은 ‘삼청’이다. 걷기에 가파른 길이라 광화문에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차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오명을 씻고 전통문화예술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한옥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서울을 조망해도 좋고, 시즌별로 준비된 전통공연을 보며 한식 상차림을 맛볼 수도 있다. 삼청각 오는 길에 지나온 삼청터널에는 삼청공원이 있다. 사실 이 터널 때문에 공원이 두 동강이 나긴 했지만 서울 시내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데 반전 매력이 있다. 올라갈수록 경치도 좋고 산책로가 호젓하다. 이곳에 정몽주와 어머니의 시조비가 있고 공원 한복판에 약수터도 있다.
삼청동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너무 상업적이라 싫어졌다 하고, 누구는 ‘아직도 삼청동 다녀?’ 라며 한물간 여행지 취급을 한다. 하지만 일단 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다채롭게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또한 전통의 동네지만 오히려 유행을 선도하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오래된 수제비집과 모던한 바가 공존하는,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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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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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 |
◆ 천재와 예술가의 세종마을
세종마을이 어디야? 원래는 경복궁 서쪽에 있어서 ‘서촌’이라 불렸는데 지난 2011년부터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세종마을’이라 부르게 됐다. 습관이란 게 무서워 여전히 ‘서촌’이 익숙하지만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니 동네이름을 바꿔도 아쉬울 게 없긴 하겠다. 세종대왕뿐 아니다. 추사 김정희, 화가 이중섭, 소설가 이상, 시인 노천명 등 이 마을을 거쳐간 천재 예술가가 많다. 그런 기운 때문일까. 이 골목은 모든 게 남다르게 느껴진다. 접시안테나로 간판을 만든 철물점, 엄마의 찬장에서 보았던 유리컵이 많은 빈티지숍, 옛날 통닭집, 갤러리와 공방…. 그리고 서울 최초의 헌책방이었다는 대오서점이 있다. 지금은 찻집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검은 기와 아래 낡은 간판과 누렇게 바랜 헌책들이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준다. 한편 골목 끝까지 올라가면 수성동 계곡이다.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표현한 바로 그곳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통인시장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시장에 오면 먹거리부터 찾게 된다. 그중 이 시장의 대표격인 기름떡볶이 집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곱게 화장한 할머니가 뚝뚝 떼어 담아주시는 국물 없는 떡볶이는 단순하면서도 개성있는 매운 맛과 기름의 고소한 맛이 어울려 묘한 중독성이 있다. 통인시장의 도시락카페도 재미있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엽전을 구매하고 도시락 통을 받아 먹고 싶은 시장 음식을 원하는 만큼 엽전과 바꾼다. 마음대로 구성하는 뷔페식 도시락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시장 구경도 하고 음식도 골고루 맛보니 일석이조다. 덕분에 먹을 수 있는 양은 제한돼 있고 맛보고 싶은 것은 많았던 주전부리의 갈등을 해결해 준다.
예술가들이 살던 동네라 그런지 시장의 디스플레이도 개성이 넘친다. 동그란 짚바구니에 담아 놓은 곡물하며, 모빌처럼 달아놓은 붕어빵, 위풍당당 스파이더맨이 가게를 지키고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놓은 찹쌀떡, 한참 들여다봐야 용도를 알 수 있는 소품 등 시장구경에 시간이 달려간다.
시장을 나오면 또다시 먹거리와 볼거리의 천국이다. 잠시 소란한 마음을 쉴 겸 카페에 앉는다. 소문난 카페, 유명한 음식점도 좋지만 이런 곳에선 나만의 아지트를 발굴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렇게 다시 올 이유를 찾으며 따스한 커피 한잔으로 여행의 소회를 풀어본다.
● 여행 정보
☞ 광화문광장 가는 법
[대중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삼청동과 세종마을은 걷기여행에 좋아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이 좋다.
삼청동: 검색어 ‘삼청공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25-1(삼청공원 앞에 유료 노상 공영주차장이 있다.)
통인시장: 검색어 ‘통인시장 주차장’ /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10-3
< 여행지 주요 정보 >
Visit Seoul
http://www.visitseoul.net
서울특별시 문화관광
http://sculture.seoul.go.kr
경복궁(광화문)
02-3700-3900 / http://www.royalpalace.go.kr
광화문 수문장 교대의식 시간: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1일 3회, 소요시간 약 15분)
광화문 파수 의식: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45분(1일 3회. 소요시간 약 10분)
통인시장
02-722-0911 / tonginmarket.co.k
< 음식 >
삼청동수제비: 말이 필요 없는 삼청동의 대표 맛집이다.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수제비 8000원 / 파전 1만3000원 / 찹쌀새알옹심이 1만1000원
02-735-2965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02
광화문커피: 통인시장 후문 쪽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다. 수제 로스팅, 핸드드립을 1987년부터 시작한 곳이니 1세대 핸드 드립 카페라 할 수 있다. 수십년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빈티지 제품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전기주전자를 사용하지 않고 가스불에 물을 끓여 바리스타의 자부심으로 내린 커피는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드립커피 6000원~ / 카페라떼 5500원 / 카푸치노 5500원
02-735-1170 /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35-11
< 숙소 >
북촌한옥마을: 삼청동과 접해있는 북촌한옥마을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을 비롯해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숙소다. 북촌한옥마을 사이트에서 자세한 옵션을 검색해 보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http://bukchon.seoul.go.kr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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