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가급락 등의 영향으로 14개월 만에 0%대에 진입했다. 또한 지난 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1.3%로, 지난 1999년(0.8%) 이후 2년째 최저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한국은행이 제시한 물가안정목표(2.5∼3.5%)에 한참 밑도는 수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국제유가 하락세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

과거 세계대공황과 일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디플레이션은 자산가격의 폭락 이후 상품가격이 하락하면서 전개된다. 또한 디플레이션 기간 중에는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 피해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디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예로는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꼽힌다. 지난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소비자물가는 25% 급등한 반면 실질GDP는 29%나 하락했다. 대공황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자산가격의 거품 붕괴와 실질채무의 부담 증대에 따른 기업도산 및 은행위기, 신용경색, 투자 및 소비 감소 등으로 경제에 대한 악영향이 증폭돼 나타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커버스토리] '잃어버린 30년' 향해 달려가는 일본

◆전세계적 경제위기 초래한 '미 경제공황'

지난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 붕괴를 계기로 발생한 대공황은 미국 자본주의체제를 넘어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당시 발생한 시장기능의 실패현상은 어느 일부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영향을 끼쳤다.

대공황이 최고에 달한 지난 1933년의 구체적인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공업생산율은 10년 전인 1929년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도매물가 역시 평균 30% 수준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실업률도 ▲미국·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리아·일본 등은 25% ▲독일·영국·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덴마크 등은 30~35%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의 대공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점이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이 실물부문의 경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30년대 초 발생한 디플레이션은 부채의 실질가치를 높여 은행의 파산을 비롯한 금융위기를 몰고 와 대공황이 심화됐음을 실증한 바 있다. 또한 실질이자율을 높여 투자를 감소시킴으로써 팽창적 통화정책의 한계를 실감케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뉴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전국산업부흥법(NIRA)이 1933년 6월 국회의 인준을 받아 공공사업국(PWA)과 국가경제회복기구(NRA)를 설치한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먼저 PWA정책을 통해 고용을 늘려 소비확대로 연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PWA는 도로·공공건물·공원·학교 등과 같은 공공건물시설을 건설함으로써 고용을 확대해 결국에는 소비를 늘리는 데 주목적이 있었다. PWA정책에 따라 미국 도시에 많은 공원·학교·동물원 등 공공시설이 건설됐고 그 결과 일자리 창출효과가 발생했다.

또한 NRA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동시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여러 제도를 마련해 산업체 간의 공정한 활동을 보장한 점도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활로역할을 했다. 다만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기미가 보이자 대기업체는 다시금 독점욕을 발동하기 시작했고 중소기업체는 갈수록 경쟁에서 밀려나 NRA의 규칙이 끝까지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 결과 NRA는 지난 1935년 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다.

[커버스토리] '잃어버린 30년' 향해 달려가는 일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은 1980년대 일본의 부동산시장에 형성된 거품이 무너지기 시작한 지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이 겪었던 극심한 장기침체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성장률은 제로에 머물렀다.

잃어버린 10년의 시발점은 플라자 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5년 당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은 기축통화인 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달러를 평가절하하는 동시에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일본은 한때 달러당 240엔대까지 치솟았던 엔화가 3년 만에 120엔대로 평가절상됐고 이후 극심한 엔고현상으로 인해 일본 수출기업들은 국제무대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일본은 이로 인해 수익이 절반 이상 줄며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일본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금리정책 카드를 꺼내들었다. 금리를 낮추면 정부는 풍부한 유동성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투자로 이어져 심각한 경제거품을 초래했다. 이후 금리인상과 대출규제 등으로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거품이 꺼지자 빚으로 부동산을 구매했던 사람들이 줄파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로 인한 부실채권 문제가 일본경제의 성장을 저하시키며 일본은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게 됐다.

이후 일본의 모든 정책은 디플레이션 퇴치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미완에 그쳤다. 일본의 보수정권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으며 개혁을 위한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경기부양과정에서 일본정부의 재정적자가 크게 악화됐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경제체질을 약화시키고 성장가능성을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불황은 지금까지 이어져 전문가들은 잃어버린 20년을 넘어서 30년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