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10만원, 인턴 30만원, 정직원 110만원, 모두 야근수당 포함’.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무급이나 적은 수준의 월급을 제공하며 취업준비생이나 인턴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위에 명시된 조건은 최근 ‘열정페이’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국내 한 유명 패션디자이너실에서 노동에 대한 대가로 직원들에게 지불한 급여 수준이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곧바로 해당 디자이너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상황이 커지자 논란의 중심에 선 디자이너는 “패션업계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같은 사과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청년 노동력 착취는 특정 디자이너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어느덧 우리나라 패션업계 전체의 문제로 번진 상태다.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작가, 디자이너, 감독 등 자신의 특성을 살린 특수직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진 문제기도 하다. <머니위크>는 현재 저임금 업종에 종사 중인 청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짙게 퍼진 ‘저임금 노동력 착취현상’을 점검해봤다.


 

/사진=뉴시스 김인철 기자
/사진=뉴시스 김인철 기자
/사진=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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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또 다른 이름은 ‘빈곤’

“올해로 2년차인 막내작가인데 급여 수준은 처음 시작할 때와 거의 변화가 없어요. 막내작가의 경우 보통 회당 25만~3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는데 이 경우 한달에 100만원 내외의 급여를 손에 쥐게 돼요. 이에 대한 대가로 매주 기약 없는 노동력을 제공하죠. 커피 심부름부터 청소 등의 잡일은 물론 자료 찾기, 자막 작성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해요. 처음에는 일이 좋아서 막연히 꿈을 좇아 이 직업에 발을 들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에 회의감이 들어요. 맡은 업무 자체가 시간 내에 끝내기 힘든 만큼 개인적인 시간을 모두 포기하고 업무에 매달려야 되는데 월급날 급여통장을 보면 오히려 의욕이 저하됩니다. 중요한 건 급여에 대한 불만을 누구나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 같은 급여체계가 유지돼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으로 인식한다는 거예요.” (2년차 막내작가)

“서울시 영등포에 위치한 A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하고 있어요. 주6일 평균 12시간 근무하면서 110만원을 월급으로 받습니다. 미용실에 스텝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미용학원을 다니며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디자이너 승급을 목표로 손님 케어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어요. 물론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급여가 불만이지만 미용학원 시절부터 디자이너를 꿈꾸며 여지껏 달려왔기에 묵묵히 참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상 디자이너로 진급할 확률이 높지 않고 옆에서 버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면 힘이 빠져요.” (미용실 스텝)

이처럼 임금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직종은 패션업계만이 아니다. <머니위크>가 ‘저임금 업종’과 관련해 취재를 진행해본 결과 소위 말하는 ‘사무직’에서 한 뼘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자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대부분의 업종에서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었으며 ‘교육’이란 명목아래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예술과 관련된 직종을 중심으로 저임금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잡지, 대행사, 명품브랜드, 사진 스튜디오 등은 물론 방송국, 미용실, 영화촬영장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저임금 현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미용실 보조노동자 근로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용실 스텝의 평균 월 급여는 93만원, 주당 근무시간은 64.9시간으로 나타났다. 또한 스텝들의 평균 시급은 지난해 최저임금인 4580원에 한참 못 미치는 2971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제작현장도 마찬가지다. 영화제작사 팀장급 스태프의 월평균 수입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 지난 2011년 도입된 스태프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 역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4대 보험 가입과 초과근무수당 지급 의무화를 골자로 한 근로계약서는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처럼 비정상적인 급여체계가 장기간 이어진 탓에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점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주로 예술계를 중심으로 부당한 급여체계 아래 노동계약이 성립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해당 분야의 경우 10년 전과 비교해도 급여 수준이 제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해당 분야의 경우 일단 성공궤도에 오르면 평균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궤도에 안착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 현재 모 방송국에서 예능작가로 활동 중인 A씨는 “막내작가에서 메인작가로 올라가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안된다”며 “더욱이 위로 올라갈수록 방송아카데미 등을 통한 인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공연이 끝난후 공연장을 정리하는 방송 스태프들. /사진=뉴시스 DB
공연이 끝난후 공연장을 정리하는 방송 스태프들. /사진=뉴시스 DB
영화촬영현장. /사진=머니투데이 DB
영화촬영현장. /사진=머니투데이 DB

◆정부, ‘열정페이’ 강요업종 근로감독 나선다

이처럼 ‘저임금 논란’이 계속해서 도마 위에 오르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패션업체 등을 상대로 고강도 근로감독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 고용노동부는 수습·인턴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턱없이 낮은 임금을 주는 관행이 만연한 의류·패션디자인업체 등을 상대로 광역단위의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감독대상 업종과 사업장을 구체적으로 선별하고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작업을 거친 뒤 본격적인 근로감독에 나설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관행이라며 청년들의 열정을 담보로 임금을 착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를 폭넓게 살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이번 특별 근로감독이 형식적인 조사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특감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관행이란 이유로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노동력 착취’ 구조를 뿌리째 들어내야 한다는 것.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는 “이번 특별 근로감독이 단순히 허울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간 우리 사회 청년들을 신음하게 만들었던 오래된 병폐를 도려내는 계기로 작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