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만 주세요. 무엇이든 도와 드립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일거리가 한가득이다. 게다가 변기라도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뿐이랴.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가구를 조립할 일이라도 생기면 도와줄 그 누군가가 절실하다.
 
이런 ‘솔로족’을 위해 잔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음식배달은 기본이고 장보기, 강아지 돌보기, 택배 받아주기, 벌레 잡기, 전구 갈기 등 고객의 사소한 부탁을 모두 들어준다.

가격은 기본료 5000원에 이동거리와 심부름의 종류에 따라 추가요금이 부과된다. 생활편의서비스전문업체 ‘띵동’에 따르면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서비스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이 주로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남성과 노인들로 고객층이 확대됐다.
 
기자는 현장에서 뛰는 ‘바이크 메신저’ 강진석씨를 따라다니며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는지 지켜봤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디저트 배달부터 변기 뚫기까지

이른 아침 강진석씨를 만나기 위해 강남에 위치한 띵동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연신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고객의 주문을 받는 직원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활기찬 분위기에 도취된 기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강씨는 첫 서비스를 가야 한다며 헬멧부터 쥐여줬다.
 
첫 주문은 논현동 근처의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면서 지도를 스윽 한번 훑어본 그는 바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최근에는 고객의 주문이 단순히 식사를 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빵, 디저트, 커피 등으로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어요. 이런 것을 혼자 매장에서 먹기 부담스러운가 봐요. 그래서 이 주변에 유명한 카페나 베이커리 등은 거의 다 꿰고 있습니다.”

도착한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벌써 아이스크림이 포장돼 있었다. ‘관제’라고 불리는 사무실 직원이 미리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받아든 강씨는 곧바로 고객의 집으로 향했다. 배달을 종료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 남짓.
 
숨 돌릴 틈도 없이 또다시 주문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이다. 사무실에 들러 장비를 챙긴 강씨는 신속하게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커튼, 블라인드 등을 설치하거나 집안 가구 또는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혼자 처리하기 힘들어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옆에서 일손을 돕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서 지금은 아예 전문장비까지 구비해 놨습니다.”

고객의 집 앞에 도착한 강씨는 따라 들어가려던 기자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고객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사람이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건장한 남자 둘이 집안에 들어가면 당황할 수 있어서다. 그는 대신 작업이 끝난 후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장비를 손에 들고 계단을 올랐다. 몇십분이 지났을까. 밖으로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살짝 감돌았다.

“변기가 꽉 막혀서 파이프를 넣어도 잘 안 뚫리는 거예요. 그래서 압축기로 수차례 눌렀더니 반쯤 먹다 남긴 사과가 나왔어요. 뒷정리를 마치고 고객에게 말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네요.”

흐뭇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하면서도 그는 또 다른 주문을 받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바쁜 현대인들, ‘뭐든 시킨다’

직장인이 많은 강남지역에서 주문이 가장 많이 몰릴 때는 역시 점심시간이다. 강씨는 생활편의서비스가 다양한 일을 제공하지만 아직도 음식배달 비중이 7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기자는 음식배달을 해주는 식당이 즐비함에도 굳이 생활편의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배달이 안 되는 맛집’의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주변에 배달하는 음식점이 많지만 이 근처에서 오래 생활한 이들은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해요. 그런데 배달이 안 되는 유명한 맛집에 가자니 줄이 너무 길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고 싶진 않고. 그럴 때 다소 배달수수료를 부담하더라도 우리에게 연락하는 거죠.”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설명하던 그는 스마트폰을 잠시 확인하더니 기자를 데리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마트로 들어가자마자 그가 집은 것은 두부 한모와 달걀 한판이었다. 대신 장을 봐달라는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그는 많이 해본 듯 가장 신선한 것으로 골라 조심스레 오토바이 짐칸에 싣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대문이 있는 곳이라 직접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인은 백발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수고했다며 그의 손에 음료수 한병을 쥐여줬다.

“최근 들어 혼자 사는 어르신들도 우리 서비스를 많이 이용해요. 자녀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한테 전화하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대요. 특히 어르신들은 고마움의 표현을 잘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니까요.”

기자와 함께한 마지막 일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달라는 심부름이었다. 이런 사소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데 놀라움을 느끼며 고객의 집 앞에 도착한 기자는 한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사는 건물 1층에 바로 편의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해 하는 기자와 달리 강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배 한갑을 구매해 고객의 집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혼자 살며 재택근무를 하는 이들은 집 밖으로 나갈 시간도 부족할 정도인가 봐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소한 심부름이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도와드립니다. 고객은 우리 덕분에 시간을 아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우리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죠. 이런 것이 바로 상생 아닐까요?(웃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