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고기도 혼자 구워먹는 '나홀로족 1번지'
1인가구시대 '솔로 이코노미' / 르포-서울 강남구 논현1동을 가다
정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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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나라 전통 가족단위였던 대가족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지난 1949년 미국 인류학자 조지 피터 머독이 ‘핵가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만 해도 가족단위 해체를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핵가족마저 1인 가구로 분열하고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1인 가구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행복을 버리고 또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머니위크>가 솔로 이코노미를 조명해봤다.
“혼자 살기 정말 편해요. 타 지역에서 살다 오면 다른 점을 느낄 수 있을걸요?”
서울 강남구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곳. 혼자 사는 인구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논현1동이 그곳이다. 대학가가 아님에도 원룸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을뿐더러 음식점에도 ‘나홀로족’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어디 이뿐일까. 혼자 사는 남녀노소를 위해 전화 한통이면 달려오는 배달서비스, 심부름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솔로를 위한 특별한 상권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의, 하나에 의한, 하나를 위한’ 논현1동에서 ‘솔로 이코노미’의 현주소를 찾았다.
◆1인 가구 56.3%, 전국 평균 2배
지난 1월20~21일 이틀간 찾은 논현 1동.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겨울 날씨 탓에 거리로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작은 커피숍에 홀로 앉아 유리창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인 만큼 간혹 가다 지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나 홀로’였다. 이 중에는 편안한 옷차림에 외투만 걸친 채 잠깐 출타한 이들이 많았다. 몇몇은 애완견과 산책했고 몇몇은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본 듯 비닐봉지를 들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논현1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논현1동에 거주하는 전체 1만4470세대(2만5210명) 중 1인 가구는 8156세대(8156명)다. 무려 56.3%로 절반을 넘는다. 논현1동의 1인 가구 규모는 대한민국의 평균 1인 가구와 비교했을 때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일컫는 인터넷용어) 수준이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가구 대비 1인 가구의 비율은 평균 23.9%다. 10년 전인 지난 2000년과 비교하면 8.4%포인트 늘어난 수치지만 논현1동의 현재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1인 가구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아파트보다 단독주택과 오피스텔 비중이, 투룸 이상보다 원룸의 비중이 훨씬 높다. 곳곳에 위치한 부동산 광고팻말만 봐도 원룸이 투룸 이상보다 현저히 많다.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원룸을 찾는 손님이 월등히 많다”며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8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타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20대 중반의 A씨(여)는 “논현1동은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 최적의 지역”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여자로서 (치안 등이 잘돼 있어) 살기 좋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녀노소 누구나 혼자 살기 좋은 곳”이라며 다른 곳과의 차별화로 심부름센터를 꼽았다. A씨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심부름센터가 보편화돼 있어 매우 편리하다”며 “생수 한병도 배달해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홀로족인 B씨(여) 역시 “혼자 있을 때 출출하면 아무거나 시킨다”며 “다른 지역에선 치킨, 족발 정도만 배달되는데 이곳에선 웬만한 것은 다 배달된다”고 덧붙였다.
◆전화 한통이면 ‘띵동’, 고깃집도 혼자
이들이 애용한다는 서비스센터는 논현동(논현1·2동)에만 6개다. 서울 신당동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가 2년 전 논현1동으로 본점 위치를 바꾼 D사 관계자는 “이곳은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심부름센터)시장이 만들어진 곳”이라며 “1인 가구 중심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늘수록 주문량도, 사업성과도 좋아진다는 것.
이 관계자는 1인 가구와 심부름센터사업 간 연관성에 대해 “4인 가구의 경우 대부분 남자나 막내가 있다”며 “하지만 1인 가구는 힘쓰는 일손이 부족할뿐더러 심부름할 막내(?)가 없으니 심부름센터를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구성원 체계가 변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긴 것”이라며 “2~3년 전만 해도 심부름센터라고 하면 사치란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유흥업소와 전문직 종사자, 고소득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많이 찾을 만큼 파이(규모)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D사의 서울지역 전체 ‘콜수’(주문전화) 중에서 논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8%가량. 강남구에서는 역삼동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콜수를 기록했으며 강북구 전체 콜수와 비교하면 거의 5배 수준이다.
1인 가구의 특성을 보여줄 만한 특이한 주문도 많다. 예컨대 5층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한 남성고객은 다리골절로 깁스를 해 ‘엘리베이터’ 역할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애완견을 키우는 여성고객이 강아지를 집에 혼자 놓고 휴가를 가면서 애견의 ‘일일주인’ 역할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밖에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들을 위한 ‘해충퇴치’와 못질 등의 공구작업도 싱글족이 많이 의뢰하는 서비스다.
아무리 배달서비스가 잘돼 있더라도 때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은 날도 있는 법. 이들을 위해 논현1동 곳곳에는 1인을 위한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특히 최근 한 방송에서 유명세를 떨친 1인 전용 고기집인 O음식점은 혼자서도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1인석을 특별히 마련해 놨다. 우스갯소리로 ‘고기만큼은 혼자서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강남구 내에서도 논현동과 역삼동, 대치동 등은 1인 가구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1인 가구를 위한 지자체서비스가 별도로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인구수가 많다 보니 1인 가구를 위한 상권도 잘 갖춰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울 강남구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곳. 혼자 사는 인구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논현1동이 그곳이다. 대학가가 아님에도 원룸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을뿐더러 음식점에도 ‘나홀로족’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어디 이뿐일까. 혼자 사는 남녀노소를 위해 전화 한통이면 달려오는 배달서비스, 심부름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솔로를 위한 특별한 상권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의, 하나에 의한, 하나를 위한’ 논현1동에서 ‘솔로 이코노미’의 현주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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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1인 가구 56.3%, 전국 평균 2배
지난 1월20~21일 이틀간 찾은 논현 1동.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겨울 날씨 탓에 거리로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작은 커피숍에 홀로 앉아 유리창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인 만큼 간혹 가다 지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나 홀로’였다. 이 중에는 편안한 옷차림에 외투만 걸친 채 잠깐 출타한 이들이 많았다. 몇몇은 애완견과 산책했고 몇몇은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본 듯 비닐봉지를 들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논현1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논현1동에 거주하는 전체 1만4470세대(2만5210명) 중 1인 가구는 8156세대(8156명)다. 무려 56.3%로 절반을 넘는다. 논현1동의 1인 가구 규모는 대한민국의 평균 1인 가구와 비교했을 때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일컫는 인터넷용어) 수준이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가구 대비 1인 가구의 비율은 평균 23.9%다. 10년 전인 지난 2000년과 비교하면 8.4%포인트 늘어난 수치지만 논현1동의 현재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1인 가구가 많다보니 자연스레 아파트보다 단독주택과 오피스텔 비중이, 투룸 이상보다 원룸의 비중이 훨씬 높다. 곳곳에 위치한 부동산 광고팻말만 봐도 원룸이 투룸 이상보다 현저히 많다. S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원룸을 찾는 손님이 월등히 많다”며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8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타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20대 중반의 A씨(여)는 “논현1동은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 최적의 지역”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여자로서 (치안 등이 잘돼 있어) 살기 좋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남녀노소 누구나 혼자 살기 좋은 곳”이라며 다른 곳과의 차별화로 심부름센터를 꼽았다. A씨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심부름센터가 보편화돼 있어 매우 편리하다”며 “생수 한병도 배달해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나홀로족인 B씨(여) 역시 “혼자 있을 때 출출하면 아무거나 시킨다”며 “다른 지역에선 치킨, 족발 정도만 배달되는데 이곳에선 웬만한 것은 다 배달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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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전화 한통이면 ‘띵동’, 고깃집도 혼자
이들이 애용한다는 서비스센터는 논현동(논현1·2동)에만 6개다. 서울 신당동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가 2년 전 논현1동으로 본점 위치를 바꾼 D사 관계자는 “이곳은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심부름센터)시장이 만들어진 곳”이라며 “1인 가구 중심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늘수록 주문량도, 사업성과도 좋아진다는 것.
이 관계자는 1인 가구와 심부름센터사업 간 연관성에 대해 “4인 가구의 경우 대부분 남자나 막내가 있다”며 “하지만 1인 가구는 힘쓰는 일손이 부족할뿐더러 심부름할 막내(?)가 없으니 심부름센터를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구성원 체계가 변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긴 것”이라며 “2~3년 전만 해도 심부름센터라고 하면 사치란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유흥업소와 전문직 종사자, 고소득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많이 찾을 만큼 파이(규모)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D사의 서울지역 전체 ‘콜수’(주문전화) 중에서 논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8%가량. 강남구에서는 역삼동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콜수를 기록했으며 강북구 전체 콜수와 비교하면 거의 5배 수준이다.
1인 가구의 특성을 보여줄 만한 특이한 주문도 많다. 예컨대 5층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한 남성고객은 다리골절로 깁스를 해 ‘엘리베이터’ 역할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애완견을 키우는 여성고객이 강아지를 집에 혼자 놓고 휴가를 가면서 애견의 ‘일일주인’ 역할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밖에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들을 위한 ‘해충퇴치’와 못질 등의 공구작업도 싱글족이 많이 의뢰하는 서비스다.
아무리 배달서비스가 잘돼 있더라도 때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은 날도 있는 법. 이들을 위해 논현1동 곳곳에는 1인을 위한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특히 최근 한 방송에서 유명세를 떨친 1인 전용 고기집인 O음식점은 혼자서도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1인석을 특별히 마련해 놨다. 우스갯소리로 ‘고기만큼은 혼자서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강남구 내에서도 논현동과 역삼동, 대치동 등은 1인 가구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1인 가구를 위한 지자체서비스가 별도로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인구수가 많다 보니 1인 가구를 위한 상권도 잘 갖춰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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