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50조원인 SK그룹의 경영권을 2000억원도 안되는 돈으로 침탈하려는 소버린의 만행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지난 2004년 3월10일. SK그룹 노동조합총연합이 소버린자산운용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앞서 2003년 3월 소버린펀드가 1768억원을 투입해 SK㈜ 주식 14%를 매입한 후 최태원 회장의 교체를 주장하며 경영권 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SK 노조는 이를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규정했다.

당시 소버린을 포함한 외국인 지분은 50% 이상인 반면 SK의 직접보유 지분은 소버린보다 적은 13%였다. 다행히 소액주주와 외국인주주 상당수가 최 회장을 지지한 덕분에 최 회장은 사내이사에 재선임됐고 소버린은 2005년 7월 SK㈜ 지분을 모두 매각한 후 한국을 떠났다. 소버린은 1조원의 차익을 챙겼다. 한국 경제사에 ‘적대적 M&A’의 전형을 남긴 사례다.

2015년 재계에도 ‘적대적 M&A’가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일동제약과 녹십자 간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표면화되고 있어서다.

 

김정주 넥슨 회장과 넥슨 판교 사옥. /사진=머니투데이 DB
김정주 넥슨 회장과 넥슨 판교 사옥. /사진=머니투데이 DB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사진=머니투데이 DB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사진=머니투데이 DB



◆ 넥슨 ‘변심’에 당황한 엔씨소프트

게임업계 1, 2위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3년여에 걸친 ‘동거’가 파국에 직면했다. 지난 1월27일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 보유목적을 돌연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하면서 적대적 M&A 논란이 들끓고 있다. 현재 엔씨소프트 지분은 넥슨 15.08%,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가 9.98%를 보유 중이다.

양사 간 경영권 분쟁과 적대적 M&A설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회자됐다. 당시 최대주주인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0.38% 추가 매입하면서 ‘투자목적’이라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시장에선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적대적 M&A 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뒀다.

당초 넥슨은 지난 2012년 6월 엔씨소프트와 글로벌시장 협력을 목적으로 김택진 대표로부터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인수하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 선후배이자 오랜 친구관계인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넥슨 회장 간의 우호적인 관계는 넥슨의 지분매입과 경영개입 공시 행보로 이제 완전히 등을 돌린 사이가 됐다.

특히 넥슨이 엔씨소프트 이사회에 주주제안 공문을 발송하면서 양사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공문에서 넥슨은 김택진 대표를 제외한 다른 이사의 교체, 추가선임이 발생하는 경우 넥슨 측에서 추천하는 후보의 이사 선임 등을 공식제안했고 결국 양사는 오는 3월 말 열리는 엔씨소프트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관련 한판 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행히 엔씨소프트는 최근 업계 3위인 넷마블게임즈와 지분 스와프를 진행한 덕에 김택진 대표 지분 9.98%에 우호지분(넷마블 보유분) 8.9%를 더해 총 18.88%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일단 최대주주 넥슨(15.08%)보다 지분상 우위를 점하게 돼 넥슨의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셈이다. 

 

일동제약 양재동 사옥. /사진=머니위크 DB
일동제약 양재동 사옥. /사진=머니위크 DB



◆ 일동제약에 ‘주주제안’한 녹십자

제약업계의 경우 녹십자가 지난 2월초 일동제약에 이사회 선임 요구가 담긴 주주제안서를 발송하면서 적대적 M&A 논란이 1년 만에 다시 불거졌다.

녹십자는 주주제안서를 통해 “이사진 3명 중 2명을 자사 추천 이사로 선임해달라”고 일동제약에 요구했다. 허재회 전 녹십자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김찬섭 녹십자셀 사외이사를 감사 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이다.

이에 일동제약은 지난달 말 이사회를 열어 녹십자 측 주주제안을 오는 20일 열리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키로 했다. 물론 3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정치 일동제약 회장의 연임 여부도 주총에서 결정된다.

일동제약 측은 “녹십자의 권리행사가 적대적 M&A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고 녹십자는 “주주로서 권리행사를 하는 것일뿐”이라고 맞선 상황.

현재 일동제약 지분 29.36%를 보유한 녹십자는 최대주주인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일가(32.52%)와의 지분차이가 3.16%포인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총에서 표대결을 통해 이사진 선임이 결정되는데 양측의 지분차이가 크지 않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앞서 녹십자는 지난해 1월 개인투자자 이호찬씨 등이 보유한 일동제약의 주식 전량(12.57%)을 넘겨받으면서 지분율을 15.35%로 늘려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아울러 일동제약의 임시주총에서 지분 10%를 보유한 기관투자자 피델리티와 함께 회사 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져 경영 안정화를 위해 지주사를 설립하려던 일동제약의 시도를 무산시킨 바 있다.

 역대 사례로 본 적대적 M&A

그동안 재계에서는 적대적 M&A로 평가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지난 1994년 한솔제지의 동해투자금융 인수와 동부그룹의 한농 인수가 첫번째 사례로 회자된다. 당시 한솔제지는 동해투금에 대해 적대적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한 뒤 지분율을 9.9%에서 25%로 늘려 M&A에 성공했다.

지난 1997년에는 외국인투자자들이 미도파 주식을 사들이면서 ‘미도파 사태’가 발발했고 신동방을 중심으로 한 적대적 M&A 세력이 미도파의 대주주인 대농그룹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 적대적 M&A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전경련을 중심으로 재계가 방어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친족 간의 경영권 다툼도 있었다.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을 맡은 현정은 회장은 취임 한달도 되지 않은 지난 2003년 11월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다.

이후 KCC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33.7%(240만4000주)까지 확보하며 경영권 인수에 나섰지만 지난 2006년 자신들이 보유 중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전량인 153만1103주(총 주식의 21.47%)를 스위스 엘리베이터업체 ‘쉰들러홀딩스AG’에 매각하면서 분쟁이 종식됐다.

이외에 KT&G는 지난 2006년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았다. 칼 아이칸은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 주식 6.59%를 매입한 뒤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1명을 확보,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8000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했고 칼 아이칸은 주식을 매각해 약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한국을 떠났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