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시행된 사회보험이다. 18세 이상 60세 미만인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감사원은 지난 16일 ‘국민연금 운용 및 경영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통해 총 20개에 달하는 감사결과 처분요구와 통보사항을 공개했다. 문제는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1개 항목(공적자료를 활용한 수급권 조사로 국민연금 부정수급 방지 등에 기여)뿐이라는 것.

감사원은 목차에서부터 이를 제외한 나머지 19개 항목에 부적정, 보완, 미흡, 불합리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100점 만점에 5점짜리 성적표를 국민연금공단에 통보한 셈이다. 국민연금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 감사결과 살펴보니… ‘문제 투성이’

첫번째로 지적된 부분은 국민연금 소진 시기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현재 예상되는 국민연금의 소진시기는 오는 2060년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는 올해부터 오는 2060년까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이 4.7~7.3%를 기록한다는 전제로 추정한 것이다.

지난 2008년 이후로 기금운용수익률 전망의 바탕이 되는 3년 만기 회사채의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저금리 시대를 맞아 금리는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반면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오는 2019년까지의 금리를 6.2~6.6%로, 기금운용수익률을 6.8~7.3%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소진시기를 예상했으니 틀릴 가능성이 크다는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당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2일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75%로 내렸다. 국민연금의 예상과 실제 금리는 4%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의 실제 수익률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예상보다 1%포인트 낮을 경우 오는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포인트 낮을 경우 기금 소진 시기는 오는 2051년, 3%포인트 낮을 경우 오는 2049년에 국민연금기금이 모두 사라진다.

기금 소진시기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 및 의결하는 ‘운용위원회’도 도마에 올랐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전체 위원 20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자산운용전문가는 한명도 없다. 관련부처 공직자(기획재정부 차관 등)나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등이 기금운용을 심의·의결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방안의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주최자인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방안의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주최자인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채용문제도 지적됐다. 국민연금공단은 기금운용직을 뽑을 때 5명 이하를 채용하는 경우 홈페이지에 기금운용직 지원자로 등록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상시채용한다. 공기업 인사에 대한 법률과 국민연금공단 내부 규정에 따르면 직원을 채용할 때는 공개경쟁을 통해야 한다. 정부의 법과 내부 규정을 어기면서 사람을 채용한 것이다. 또한 성과가 저조한 운용직의 경우도 제대로 된 사유 없이 재계약하는 등 ‘원칙을 어기는’ 인사행태도 지적됐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시 자체적으로 투자하는 것 외에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자금을 위탁해 운용한다. 금융투자업계에 기금을 위탁하는 행위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증권사의 경우 평가결과 획득 점수를 잘못 줘 평가순위가 1위인 회사가 4위로 밀려났다. 또한 자산운용사도 선정을 잘못해 맡겨놓은 기금 가운데 183억원을 돌려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되레 4248억원을 더 맡긴 사례도 나왔다.

심지어 성과를 내지 못한 해외 현지 운용사를 '봐준' 사례도 있었다. 해외주식 거래를 위탁한 현지 운용사들이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자 현지실사를 나가 수익을 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도 '노력하고 있다'는 명분을 달아 기금을 부실 운용사들에 그대로 맡겼다. '도둑 고양이'에게 국민이 노후에 먹을 '생선'을 맡긴 꼴이다.

◆ 연금 잘못 주고 성과급·퇴직금은 펑펑

국민연금을 잘못 지급하거나 주지 않은 사례들도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국민연금법상 시각장애등급 1~4급과 장애인복지법상 1~6급으로 판정된 사람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운전면허를 보유할 수 없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에는 시각장애가 있다며 장애연금을 받아가면서도 경찰청의 수시적성검사를 통과해 운전면허를 보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부정수급 우려가 있는데도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중복 수령한 사례도 발견됐다. 공무원연금 대상자는 국민연금 사업장이나 지역가입자로 가입할 수 없도록 막고 있지만 감사원이 공무원연금 가입자 및 수급자 자료와 국민연금 수급자 자료를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공무원연금을 받으면서도 사업장 혹은 지역가입자로 국민연금도 같이 가입한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반환일시금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이 10년 미만인 사람이 60세가 되면 그동안 낸 보험료와 이자 등을 포함한 ‘반환일시금’을 지급한다. 반환일시금 대상자가 65세가 될 때까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국민연금공단은 이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연금공단은 지급기한이 6개월 남았을 경우 이를 찾아가라는 ‘청구안내’를 해야 한다. 주소지 등을 국민연금공단이 알고 있어 충분히 안내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구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반환일시금을 받지 못하게 된 사례가 수백건에 달했다.

국민연금공단 직원에게 지급되는 성과급도 도마에 올랐다. 직원의 경영평가 성과급을 정부 지침보다도 많게 산정·지급한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로 인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정부의 기준을 적용해 경영평가 성과급과 내부평가급을 계산한 결과 총 3억1078만원을 더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도 마찬가지였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퇴직한 임직원 206명에게 1년 미만의 근속기간을 부풀려 2억6861만원의 퇴직금을 과다지급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이번 감사원 지적과 관련해서는 몇몇 지적사항을 제외하고는 지난해부터 대부분 개선됐다. 감사원 지적사항을 100% 조치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감사원이 지적한 것 중 어떤 사항이 개선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에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면서 “전에는 징계 등의 사후조치를 하라는 지시나 고발 등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개선점에 대한 지적 정도였다. 다른 기관 감사 결과에서는 찾기 힘든 모범 사례도 하나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